동짓날 밤, 붉은 열매

by 달리아

1년 중 가장 밤이 길다는 동짓날 밤. 한 손으로는 열이 펄펄 나는 첫째의 등을 쓰다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엄마의 품을 파고드는 둘째를 토닥이며 긴긴밤을 지새운다. 낮고 작은 목소리로 오래된 기도문을 읊조리며, 이처럼 막막하고, 힘들고, 아픈 순간들에 같은 기도를 했을 엄마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연결됨을 느낀다.


학창 시절엔, 주제와 핵심어를 찾아 문제를 맞히기 위해 머리로 분석하며 읽었던 시 한 편이 가슴 가운데 피어난다.


*


어두운 방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라곤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山茱萸)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제목이 '성탄제'였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때라 그 의미가 더 깊이 다가온다.


시인이 느꼈듯, 나 역시 어둡고 추운 세상 안에서도 생명의 불씨와 사랑의 열매를 지켜오셨던 할머니와 어머니와 아버지의 존재들 덕분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음에 뭉클한 마음이 솟아오른다.


서른이 넘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불혹을 바라보지만, 여전히 때때로 흔들리고, 혼란스럽고, 힘든 날들이 있다. 그런 날엔 내가 받았던, 내게 전해졌던 붉은 열매를 떠올린다.


그럴 때면, 내가 아직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임에도, 어리고, 여린 생명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 마음이 휘청이던 나를 다시 세우고, 중심을 잡게 한다.


이렇게, 엄마 역할을 하며 성장하고, 성숙해 가면서, 나의 아이들에게, 그리고 아이들과 둘이 아닌 세상의 존재들에게 온전하고 따뜻한 품을 내어줄 수 있으면 한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낮고, 어둡고, 소외된 자리에 오직 사랑을 전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의 탄생과 그 의미를 깊이 새기는 순간이다.


아이들이 잠이 들고나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나서 첫째의 이마를 짚어보니, 열이 한 풀 꺾였다. 아이의 숨소리도 한결 편안해졌다.


모든 불안과 걱정을 넘어,

내 안에 흐르는 붉디붉은 열매를 기억하며 전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