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by 달리아

아이들의 마스크를 다시 주문했다. 마스크를 벗은 해방감을 느낀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시점이었다. 지난 2주간 소아과를 다섯 번이나 다녀왔는데, 갈 때마다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각종 바이러스들이 유행한다고 했다. 날씨도 갑자기 추워지니, 드라이를 해서 넣어두었던 패딩도 꺼내입고, 3월이면 사라지시던 동네 붕어빵 아저씨도 다시 나오셨다.


이상 기온이 지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미세먼지와 황사가 몰아친다. 날씨를 검색하다 보니 '외출을 자제하세요'라는 경고가 뜬다. 이 아름다운 봄날에, 한창 돋아나는 새싹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다니! 그 사이 봄날도 곧 지나가고 길고 무더운 여름이 찾아올 것만 같은 직감에 두려워진다.

약 봉지만 몇 개인 것인가...
어제 검색한 날씨와 하루종일 빨간불이었던 공기청정기


두 아이들을 데리고 세 번째 병원을 가던 택시 안에서였던가. 첫째가 물었다.


"엄마, 한 사람이 아프면
왜 계속 다른 사람이 아파?"


며칠 전, 자신이 앓은 열감기 증상을 엄마와 동생이 번갈아 겪는 걸 보고 궁금했나 보다. 곧 내릴 때가 되어서 길게 답변하진 못했지만, 너와 나는 거의 1년 동안 한 몸으로 지냈기에, 네가 아프면 엄마도 저절로 아팠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실로 그랬다. 아이가 배고프다고 울면 젖이 돌았고, 아이 배에 가스가 차면 같이 소화가 안 되었다. 반대로 아이가 해사하게 웃으면 나도 덩달아 웃게 되었다. 아이들을 키운다는 건, 우리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 존재인지를 몸으로 깨우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소아과 앞에는 '공존"을 주제로 한 이어진 띠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같은 공간에만 있어도 금방 전염이 되어 버리는 각종 바이러스처럼,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산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짜증을 내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안의 모두가 이내 신경이 곤두서고, 몸이 방어태세로 긴장되는 것처럼 말이다.


오래도록 아픈 아이들을 데리고 어딘가 피신이라도 가고 싶지만, 온 하늘을 뒤덮은 미세먼지와 가뭄과 산불 등의 자연재해나 끝없는 개발을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도망갈 곳조차, 출구조차 없는 막막한 현실 앞에서, 피할 수 없는 재난을 일상에서 겪으며 살아가는 일상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럴 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에 마음을 기대어본다. 고난과 아픔 속에서도 함께 존재하는 감사할 것들와 작은 기쁨을 찾고 또 나누는 것이다.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네가 행복하면, 나도 기쁘다.'는

결국 같은 마음이다.


이는 서로가 떨레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아는 것에서 오는 생각과 느낌이다. 고통받고 있는 존재들을 보면 내가 아파져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마음이기도, 활짝 핀 꽃을 보면 절로 행복해지듯 다른 이들의 기쁨을 보면서 덩달아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이기도 하다. 반대로 나의 기쁨과 행복이 다른 존재들에게 번져가기도 한다.


오늘 아침엔 뒷마당의 튤립도 몇 송이나 활짝 피어났고, 며칠 동안 물 마시는 것도 힘들어 쳐져있던 둘째가 기운을 차렸다. 이처럼 미세먼지, 황사, 각종 바이러스를 뚫고 자라나는 생명들을 볼 때면 안쓰럽고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나도 그만큼 더 기운을 차리고,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 4년 동안 백혈병과 난치병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그랬다. 죽음과 고통을 매일 마주하며 살아가던 아이들에게 내가 배웠던 것은 꺼지지 않는 생명의 힘과 성장하려는 열망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이 생을, 이 세상을 지속시켜 나가는 힘처럼 느껴졌다. 요즘처럼 힘들고, 어려운 시절일수록 그 불꽃같은 빛과 온기를 지키고, 키우며 살아가야 함을 다시금 기억한다.


활짝 핀 튤립 앞에서, 꽃처럼 웃는 아이와 함께 웃으며 말이다.


#튤립 #봄날 #생명력 #미세먼지 #황사 #코로나 #마스크 #면역력 #그럼에도불구하고

이전 16화아이의 열이 내리지 않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