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열이 내리지 않는 밤

by 달리아

첫째가 밤새 고열로 끙끙 앓았다. 열이 치솟아서인지, 아이는 "춥다, 덥다"를 반복하며 잠꼬대같은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약과 해열제를 먹여도 열이 안 내리자 겁이 덜컥 났다. 아이가 아픈 이유를 짚어보자니, 걸리는 것이 한두가지 아니었다. 갑자기 잘 자던 둘째까지, 연달아 기침을 시작했다.


신랑과 함께 가습기에 물을 갈고, 공기청정기 전원을 켜고, 물에 적신 수건으로 첫째를 닦이고, 둘째 옷을 갈아입혔다. 엄마, 아빠의 분주한 움직임 끝에 다시, 두 아이들은 다시 곤히 잠이 들었다. 한결 편안해진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기도를 했다. 아이가 처음 내 품에 안겼던 순간부터 지금껏 수없이 보아왔던 얼굴이었다.


'이 작은 얼굴에 어떻게 눈, 코, 입이 다 있지?'

싶었던 신생아 시절 때부터, 보고 또 보아도 자꾸만 보고싶은 얼굴이었다.


돌아보니, 그 작디 작은 얼굴 앞에서 나는 그전엔 짓지 않았던 표정들을 많이 지었던 것 같다. 그만큼 처음 겪었던 일도 많았고, 그만큼 생경한 감정들과 바닥같은 마음들도 마주해야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나의 끝과 끝을, 나의 극과 극을 만나며 그를 날실과 씨실처럼 엮어가는 여정이기도 했다.


두 아이들을 보느라 밤을 거의 새고 깜빡 잠들었는데, 배고프다는 아이의 말에 눈을 번쩍 떴다. 아침을 먹이고 병원에 갔더니, 소아과 밖까지 대기줄이 나와 있었다. 몇 주간 이어진 심한 일교차에, 미세먼지에, 3월 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을 아이들의 모습과 함께 애썼을 부모들의 피곤한 안색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문득, 얼마 전 다녀왔던 양산 꽃피는유치원 건물에서의 순간이 떠올랐다 처음 머무는 낯선 공간임에도, 아이들은 너무나 편안하게 뒹굴거렸다. 그곳은 발도르프 교육을 바탕으로 운영되어 온 공간에 따스한 색감이 스며들어 있었다. 두 아이가 다녔던 발도르프 어린이집에도 벽이나 커텐 등의 색이 살구빛에 가까운 따뜻한 색이었다. 그 색은 태아들이 엄마의 자궁 속에 있을 때 둘러싸인 색과 가장 가까운 색이라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세상에 나오긴 했지만, 그런 아늑함과 편안함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안전하다는 믿음이 있을 때 아이들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흔들리는 땅 아래로 뿌리내리고 자라날 수 있는 생명은 없다. 앞서 이 세상을 누린 어른으로 이 세상과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진료실 앞에서 내게 몸을 기댄 아이를 안으며, 자꾸만 망가지는 이 세상을 커다란 살구빛 천으로 덮는 상상을 했다.


진료 후 병원 옆 작은 약국에도 줄이 밀려, 아이들과 잠시 주차장 앞으로 나왔는데, 작은 화단에 민들레, 산까치, 꽃마리가 가득 피어있다.


"엄마, 머리 위를 봐."


라고 둘째가 가리킨 곳에는 벚꽃이 몽우리져 있다.


"너가 여기 있었구나. 참 예쁘다."


며 작은 꽃들을 쓰다듬는 작고, 통통한 손길에 눈과 마음이 머문다.


어디서든 기어코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경이로움의 목소리로 감탄하는 아이들의 열린 눈과 귀와 입과 모든 감각들과 마음이 참 귀하다.


병원에 다녀온 뒤, 두 아이들은 이 시간까지 늦게 낮잠을 잔다. 반팔로 갈아입고도 식은 땀을 줄줄 흘리던 첫째의 열이 내려 숨을 고르며 이 글을 쓴다.


이렇게 앓고나면, 아이들도, 나도, 봄비 내린 뒤의 싹들처럼 쑥 자라나고, 피어날 것이다.


4월의 첫날 만우절엔, 매해 거짓말처럼 진짜 봄이 찾아왔다. 남은 봄엔 아이들과 들판으로, 숲으로, 더 많이 걸어 들어가야겠다.


함께 지켜가야할 아름다움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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