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수액 맞고 갈 수 있지요?”
"아, 네네. 비타민이랑 마늘 주사랑
같이 놓아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동네 내과 수액실의 작은 침대는 전기장판으로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그 위에 몸을 뉘이고 커튼을 닫자 긴장이 풀리며 잠이 밀려왔다. 깜빡 잠이 들 찰나, 커튼을 젖히며 푸른 옷을 입은 간호사 한 분이 들어오셨다. 혈관을 조이는 고무줄, 따끔한 주삿바늘, 차가운 수액의 감각에 풀어졌던 몸이 다시 움츠러들었다. 천장 가까이 매달린 수액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최근 며칠 간의 일들이 떠올랐다.
어젯밤에는 자다가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눈알도 빠질 것만 같고, 순간적으로 시야도 흐려졌다. 여태 거의 먹어본 적이 없던 진통제를 두 알이나 먹고 잤다. 새벽에 눈을 떴는데 땀이 너무 많이 나서 겉옷까지 젖어있었다. 땀이 식어 오한이 들었다. 옷을 갈아입으며 코로나 자가 키트 진단을 했다. 면봉으로 코안을 깊이 찌르자 재채기와 함께 콧물이 쏟아졌다. 몇 분이 지나도 검사 키트에는 한 줄만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그럼 뭐 때문일까?’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이 정도로 아프진 않았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했던 각종 바이러스들의 이름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지난주부터 열감기를 앓았던 첫째가 이만큼 아프고 힘들었구나 싶었다. 아이는 해열제를 먹어도 38도 이상의 고열이 이틀동안 떨어지지가 않았다. 기운이 없어 늘어진 아이는 나무늘보 새끼처럼 엄마에게 붙어있으려 했다. 며칠 사이 병원 진료도 두 번 다녀오고, 양약과 한약을 같이 먹여도 큰 효과는 없었다. 밤이 되어 아이가 기침을 계속하다가 토를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더 졸였다. 여러 일들로 신랑이 늦는 날이었다.
택시라도 타고 응급실에 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마침 친한 언니가 먹을거리를 나누러 집에 들렀다. 언니는 아이를 보더니 두 팔을 걷고 냉장고에 있던 무 중간 부분을 강판에 갈아 꿀에 10분쯤 재어두었다가 그 즙을 아이에게 먹였다. 그리고 아이의 등과 손과 발바닥의 혈자리들을 눌렀다. 금세 아이의 기침이 멎고, 숨소리가 편해졌다. 어떻게 그렇게 익숙하게 잘 대처하는지 신기하다는 내 반응에, 언니는
“나도 우리 아이 어릴 때 천식으로 맨날 응급실 달려가고 해서, 안 해본 게 없네. 미세먼지랑 코로나 때문에 애들이 더 고생이지.”
라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떠올리던 중 간호사가 다시 커튼을 열고 간호사가 주삿바늘을 빼고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한 고비를 또 넘기고, 나는 냉동 재첩국을 해동해서 식은 밥과 부추를 넣어 팔팔 끓였다. 밥알이 퍼져 죽처럼 되직해진 밥을 한 입 입에 넣다가, 친한 언니들과 시어머님이 주신 반찬들이 떠올라 냉장고 문을 열었다. 반찬을 얹은 밥을 넘기자 부어있는 목구멍으로 뜨거운 위로가 흘러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그 힘으로 오늘밤을 또 견딜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정성이 베인 반찬으로 한 그릇 먹고나니, 마치 뿌리에서 양분을 빨아올린 나무처럼 힘이 차올랐다. 늦은 시간이라, 침대에 누워 아이들을 재우려는데 열감이 남아있는 아이들은 칭얼거리며
"엄마, 엄마"
하며 매달렸다.
나는 봄날의 나뭇가지처럼 두 손을 한껏 뻗어 두 아이들의 등을 쓰다듬고 토닥이며
"자고 나면 다 괜찮을 거야."
를 주문처럼 소리 내어 몇 번이나 되뇌었다. 아이들은 양손으로 엄마의 손을 꼭 감싸더니 이내 깊이 잠이 들었다. 나는 그제야, 어리고 여린 새끼들을 둥글게 품은 어미의 모습을 하고선, 까무룩 잠이 들었다.
"토. 닥. 토. 닥"
마침 내리기 시작한 봄비가 잠결에, 먼 곳에서부터 점점 더 가까이 들려왔다.
#엄마가아픈날 #봄비 #네가아프면나도아프단다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