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더기 세상을 삽니다

by 달리아
"엄마, 어린이집은 왜 맨날 가야 하는 거야"

둘째가 물었다. 커다랗게 뜬 동그란 두 눈앞에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나도 외출하기 싫은 날이 있듯, 아이도 힘든 날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주말 동안 첫째가 열이 나고 아팠던 지라, 둘째도 같이 병원에 갔다가 근처 놀이터에 가기로 했다.


첫째의 열이 내리지 않는다는 글을 보고, 친한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니의 아이가 비슷한 증상일 때 아데노 바이러스 감염판정을 받고 며칠 입원을 했다고 했다.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라니 걱정이 되어 잠든 아이 곁에서 검색창을 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만 해도 감당하기에 벅찬데, 검색을 하다 보니, 별별 바이러스와 전염병들이 많았다. 아직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은 각종 바이러스들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다시 찾은 병원 진료에서는 감기가 낫는 과정이라 하셨지만,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이 세상이, 이 지구가 아픈 것이 생생하게 느껴져 가슴이 아프다. 미세먼지, 방사능, 환경호르몬, 코로나... 등 오염된 세상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미안해진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기어코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키를 낮추지 않으면 결코 볼 수 없는 작은 꽃들과 눈을 맞추고, 풀 사이를 기어 다니는 작은 곤충들에게 인사한다. 그런 아이들을 따라가다 보니, 꽃무더기 세상이 펼쳐진다. 이 맘 때 매년 찾아 읽었던 이해인 수녀님의 시가 절로 떠오른다.




4월의 시


꽃무더기 세상을 삽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 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

자기가 제일인 양

활짝들 피었답니다.


정말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새삼스레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고

고운 향기 느낄 수 있어

감격이며

꽃들 가득한 세월의 길목에서

살고 있음이 감동입니다.


눈이 짓무르도록

이 봄을 느끼며

두 발 부르트도록

꽃길 걸어 볼랍니다.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지요


오늘 이 봄을 사랑합니다.


오늘 곁에 있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4월이 문을 엽니다.

병원진료 후 놀이터 벤치에 앉아 가만히 시구절들을 떠올리고 있는데, 부지런히 꽃그늘 아래를 오가던 아이들이 선물이라며 내 앞에 꽃들과 솔방울을 펼쳐 놓는다. 색색의 봄들이 황홀한 빛을 뿜어내는 모습에 순간 감탄하는 것도 잊었다가, 바람에 꽃잎들이 날아가는 모습에 뒤늦게 탄식하듯


"아"


소리가 나왔다.




오늘도 피어나는 아이들에게 배운다.


'다시는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찾고, 즐기고, 나누는 것의 기쁨을!
온갖 역경 속에서도 끝내 피어나는 작은 생명들이 품은 힘을!'


꽃송이들이 날아간 자리를 바라보다 보니, 꽃무더기 세상이 다시 두 눈 가득 펼쳐진다. 나는 굽어있던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놀이터 한편에 자리 잡은, 오래된 은행나무 가지 끝에 돋아나는 새 잎들이 보인다. 보드랍고 연한 잎들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까르르" 웃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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