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으로 받는 환대

'또 다른 나'를 만난다는 것

by 달리아

살다보면, 가끔씩, 거울같은 이들을 만난다. 분명 처음 만난 것이지만, 어딘가 익숙하고, 친숙한 느낌이 든다. 그럴 때 나는 사투리가 나온다. 아마 긴장이 풀어지고 편안해서 그런 것 같다. 이번에 양산에서 만난 정호샘이 딱 그랬다. 심지어 여러 인연들이 포개져있고, 삶의 키워드와 관심사들이 너무나 비슷했다.


정호샘은 처음 보는 나와 아이들을 위해 저녁까지 차려주셨다. 어린 오가피잎과 두릅을 직접 따서 차려낸 밥상엔 봄기운이 푸릇하게 담겨있었다. 오가피잎으로 부쳐낸 전과 두릅 샐러드, 쑥향이 가득한 된장국에, 강황가루가 들어간 야채볶음에는 향과 식감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씁쓸하면서도 달큰한 나물 반찬에 입맛이 돌아 나는 평소보다 밥을 두 배나 많이 먹었다. 평소에 주로 요리를 해주며 행복을 느껴왔는데, 밥상을 받는 기쁨도 만만치 않았다. 정성과 사랑이 가득한 밥상에는 환대와 환영의 마음이 녹아져 있어, 밥술을 넘길 때마다 충만한 기운이 차올랐다.

다음 날엔 정호샘 가족과 새벽에 춘분제에 다녀왔고, 오후에는 정호샘이 마을밥상, 마을 카페와 비건 빵집, 공방, 책방까지 안내를 해주셨다. 저녁을 먹고서는 함께 짜이를 팔팔 끓여마시며, 오래도록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음과 의식의 여러 층들이 펼쳐지며 스며나오는 환한 빛이 우리를 감싸는 듯했다. 열린 가슴이 맞닿은 자리에 얼음 가시같은 상처가 강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마지막 날, 정호샘은 밝은공방의 지혜샘이 전수해주신 빗자루 만들기 연습 모임에 초대해주셨다. 지혜샘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정진호 선생님의 행복화실에서 마주 앉아 그림을 그렸던 인연이 있는 분이었다. 또 다른 인연 고리에 반가워하며, 마을 엄마들과 둘러앉아 빗자루를 엮었다. 머리카락같은 모시풀을 색색의 실로 묶어 쓰다듬으며, 마음도 가지런히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미리 준비해 온 이해인 수녀님의 봄시로, 모임을 열고, 닫았다. 원으로 둘러앉아 마음 나누는 것이 익숙하신 마을분들과의 시간은 참으로 충만했고, 또 따뜻했다. 엄마들이 빗자루를 만드는 동안, 아이들은 마당을 뛰어다니다 들어와서 빗으로 모시풀을 가다듬기도 했다. 완성된 빗자루를 바라보기만 해도 안팎의 먼지들이 쓸어지는 것만 같았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버스와 기차를 타고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프랑스 플럼빌리지의 숲 속에서 아이들과 불렀던 노래가 오랜만에 떠올랐다.


"We are all the leaves of one tree. "


노랫말처럼 한 나무의 나뭇잎처럼 가깝게 이어져있는 우리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토록 깊이 연결되어, 당신이 곧 '또다른 나'라는 것을 선명하게 비춰주는 인연을 만나, 너무나 반갑고, 감사했다. 나는 정호샘을 만나기 전, 선생님의 새 그림을 보고 반했었는데, 내가 마을을 떠나기 전날 샘은 나를 떠올리며 주황빛 딱새를 그려주셨다.

예쁜 새가 날아와 정호샘 가정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어 고맙다고 하셨다. 샘의 표현대로 '또릿또릿'한 딱새의 눈을 들여다보니, 절로 웃음이 났다. 그런 눈빛으로 자유롭게 세상을 날아다니며, 행복의 노래를 부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리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를 거울처럼 맑게 비추며, 응원하는 '또 다른 나들' 덕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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