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놀이터에 갈 때면 눈과 귀가 활짝 열린다. 자꾸만 걸음을 멈추고 감탄하는 아이들 덕분이다. 아이들은 내 눈에는 잘 안 보이는 것들을 잘도 발견한다. 키가 작아서인지, 걷는 속도가 느려서인지, 아이들은 바닥을 기어다니는 개미나 지렁이부터, 나무에 붙은 매미나 보호색을 띤 곤충들도 너무나 잘 찾는다. 그리고선 뒤따라오는 나를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킨다. 그 때 주로 내뱉는 말 삼종세트는
"우와", "이건 뭐지?", "여기 좀 봐!"
이다.
아이들의 발걸음이 멈춘 곳을 줌인해서 보면, 생명들이 살아있는 모습이 더 생생하게 보인다. 느슨하게 어슬렁거리다 "앗, 고양이"라는 말에 놀라, 꼬리와 털을 세우고 후다닥 도망가는 고양이, 막 껍질을 벗고 투명한 날개와 몸을 말리는 매미, 꽃 속에 숨어 먹잇감을 기다리는 다리가 긴 게거미들을 보다 보면 나는 어떤 모양새로 숨을 쉬고 있나 돌아보게 된다.
너무나 신비롭고 아름다웠던 매미그래서 나는 놀이터에서만큼은 핸드폰 화면 보다 아이들의 손가락 끝을 보려 더 노력한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무언가를 잘 찾는 건, 그만큼 이 세상이 신비하고 작은 곤충이 궁금한 마음 덕분인 것만 같다. 마음을 기울여 보니 더 자주, 잘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이가 들며 갈수록 잃게 되는, 자세히 보는 능력과 감탄하는 힘을, 나는 아이들을 통해 다시 더듬어본다.
*
오늘은 저녁을 먹고 놀이터에 나갔는데 앞서가던 둘째가 작은 벌레 한 마리를 손에 잡고선 나를 부른다. 귀뚜라미인가 보니, 꼽등이 같기도 하다. 풀밭에 다시 놔주라고 해놓고선, 귀뚜라미라고 생각했을 땐 아무렇지 않다가, 꼽등이라 생각하니 좀 징그럽다 생각했던 내 안의 편견을 마주한다.
이번엔 첫째가 길바닥에서 온몸을 뒤척이는 지렁이를 발견했다. 사람의 체온이 높아 지렁이를 손으로 만지면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책에선가 본 뒤로, 나뭇잎이나 나뭇가지 등을 이용해 밟히지 않는 곳으로 옮겨준다.
그다음엔 아이들이 차례로 뒤집혀서 죽은 매미들을 발견한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까진 매미 소리로 자욱하게 울려 퍼졌던 놀이터가 고요하게 느껴진다. 금세 몸을 낮춰 매미를 관찰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니,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와 그를 그림과 엮어 만든 <살아있다는 건>이라는 그림책이 떠오른다.
그림책 <살아있다는 건> 중에서읽을 때마다 숨이 깊어지는 시이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그림책이다.
*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것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
...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만난다는 것
그리고
감춰진 악을 주의 깊게 거부하는 것
...
지금 그네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
...
바다는 아우성친다는 것
달팽이는 기어간다는 것
사람은 사랑한다는 것
당신의 손의 온기
- 다니카와 슌타로 '살다', 류시화 옮김
*
날이 점점 깜깜해져서 이제 집에 가자고 하니 아이들이 내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다.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는 둘째는 거미줄 모양 구조물 위를 끝까지 올라가는 것을, 첫째는 구름사다리 위에 올라가 반대편까지 이동하는 것을 봐달라고 했다. 중간에 한눈을 팔고싶은 것을 참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 과정을 지켜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할 수 없었던 범위의 동작들이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반경을 넓히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나는 마치 중요한 올림픽 경기를 지켜보듯 그 과정을 숨죽이며 바라보았다. 자그마한 손으로 몸을 지탱해가며 원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의 성취감이 뜨겁다. 아이들은 땀이 송송 맺힌 얼굴로, 비를 머금고 피어나는 꽃처럼 웃는다. 어떤 보상이 없이도, 스스로 정한 목표를 이루었다는 기쁨이 몸을 뚫고 솟아오르는 것만 같다. '열심'이라는 단어의 뜻처럼 마음에 열이 나도록 무언가에 몰입하는 모습이다. 그를 지켜보는 관객인 나는 힘찬 박수로 놀라움을 표현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도전하고 배우고 성장한다. 놀이는 몸과 마음을 유연하게 한다. 놀이에는 심각함도, 후회도, 걱정 고민도 없다. 놀이는 현재를 최대한 살 수 있도록 해준다. 어른인 나도 아이들처럼 놀 듯이 모든 일을 하고 싶다. 우리의 삶터가 놀이터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신랑이 언젠가 놀이터에서 다같이 놀다 들어가는 길에 놀다가 지친 아이를 업고선,
"아이들이 행복한 것을 어른들이 방해만 안 하면 되는 것 같아."
라고 했던 말이 오늘따라 더 공감이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놀이터 앞의 편의점에서 요구르트와 바나나우유 하나씩을 사서 열을 식힌다.
"엄마, 꿀맛이야. 너무 시원해."
하고 엄지를 척 올리는 아이들은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은 표정을 보여준다. 나도 매일 닮아가고픈 얼굴이다.
오늘 밤엔 꿀잠 예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