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언니 덕분에 뮤지엄웨이브에 다녀왔다. 길상사 넘어 산속에 위치한 미술관 앞에 내리자마자 감탄이 나왔다. 건물 너머로 이어진 정원의 초록과 그를 빼곡히 채운 돌상들은 마치 다른 세계처럼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알고 보니 우리옛돌박물관이었던 곳을 미술 전시관과 함께 재단장 한 것이라 했다.
뮤지엄웨이브라는 이름의 미술관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첫 개관 전시인 숭고는 VR과 여러 매체들을 결합한 전시였다. 건물 자체도 넓고 쾌적한 데다 어느 층에서든 탁 트인 하늘과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롯데타워까지 보이는 전망!
1층 매표소에는 커다란 장군(?)이 새겨진 돌이 있어 포즈를 따라 찍어보았다.
1층 전시장엔 런던에서 활동하는 중국 화가인 재키 차이의 작품들이 있었다. 중국 특유의 색감과 전통 세밀화 느낌에 현대적 감각이 섞여있어 묘한 매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죽으로 만든 꽃들로 만들어진 커다란 해골이 눈에 확 띄었다. 해골 그림도 다양하고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브랜드와 협업한 작가였다. 해골 조형물과 전시장엔 알약들이 깔려있었고, 슈퍼맨이 코로나 검사를 받는 재미난 콘셉트의 그림도 있었다. 코로나 시기의 힘든 투쟁을 예술로 승화한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2층의 첫 번째 전시장은 빛깔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처음엔 마크 로스코 작품이 떠오르긴 했는데 훨씬 더 밝은 느낌이 들었다. 전시의 주제인 순수한 빛이라는 단어와 딱 맞는 느낌이랄까! 알고 보니 작가님께서 특수 제작한 캔버스를 적시고 말리고 하면서 빛이 투과하게 만든 그림이라고 했다.
2층 두 번째 전시장에서는 또 한 번 감탄이 나왔는데, 실내에 가득한 과거의 석상들에 원색의 현대 미술작품들이 섞여 있어 굉장히 다채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특히 로봇 태권브이 같은 원색 모형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작가님의 작품은 원형적이고 원시적인 상징들을 캔버스에 입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참 좋았다.
3층은 미리 관람 전 시간을 예약해야 갈 수 있는 체험형 전시였는데, 시간에 맞춰가니 먼저 어두운 공간에 앉아 헤드폰을 쓰고 마치 가이드가 있는 명상을 하듯 몰입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어서 VR과 손잡이 두 개를 끼고 체험형 비디오 아트를 감상했는데 그 주제와 영상이 참 놀랍고도 신비했다. 마치 무한의 공간에서 둥둥 떠서 내 몸과 마음을 이루는 원자, 미립자 같은 미시세계에서 계속 변화하는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는 기분이랄까! 나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영상들을 보며 양자역학 이론들을 직접 피부로 체험해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시간이 20분 정도 상영되어서 기계가 무거워 목이 아팠던 것과 어지러웠던 것을 제외하면 정말 좋았고, 알고 보니 내레이션을 이정재가 녹음했다고 해서 '오잉?' 했다. 평소 영화 속에서 듣던 목소리와는 사뭇 다른 낮고, 고요한 목소리라 낯설게 들렸나 보다.
VR 감상 후 나오면 어두운 공간에 두 개의 큰 스크린이 마주하여 영상이 재생되었다. 뮤지엄웨이브 상설 전시답게 이 세상의 흐름이 잘 담긴 영상과 체험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관람객이 나와 함께 간 언니 외 한 명밖에 없었는데, 다른 한 분이 영상을 보시는 동안 반대쪽 영상 앞에서 자유롭게 몸을 움직여보았다. 마치 내 안에서 붉디붉은 불이, 피가, 사랑이 솟구치는 느낌과 흐름이 참 좋았다.
전시장 관람 후엔 야외 정원으로 나갔는데, 산책로에 무궁화가 심어져있고, 큰 석상들도 있어 마치 깊은 산속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마침 제비나비들도 춤을 추듯 날고 있고 비가 살짝 내리며 더 신비한 분위가 나서 얼핏 신선들이 살았다던 무릉도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가능한 멋진 풍경들과 분위기 속에 더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었다. 2층엔 커피와 간단한 디저트를 파는 카페도 있었는데, 오늘은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아 다음을 기약했다. 1시간 반 정도의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아주 먼 곳을 여행 다녀온 느낌이라 참 좋았다.
마침 오늘이 개관 전시 마지막 날이었다는데, 첫 전시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 기뻤고, 다가올 다음 전시들도 참 기대가 된다. 아름다움의 세계로 초대해 준 언니에게도 감사하다. 이처럼 일상을 예술로 채워가며, 여행처럼 살아갈 수 있음에 참 감사한 매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