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죽고 싶어요."

by 달리아

임용고시 합격 후 서울시의 한 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다. 처음 가르쳤던 과목은 컴퓨터와 음악이었다. 학교에는 담임 외에 교과전담 선생님이 있었다. 내가 가장 못하는 것이 컴퓨터였지만, 나는 한글 타자 수업 시간에 좋은 시를 함께 읽고 타자를 치거나 인디스쿨의 좋은 자료들을 활용해서 위기를 넘겼다.


음악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불을 끄고 엎드려서 빗소리를 듣다가, 비를 주제로 한 피아노 곡을 들었다. 강물을 주제로 한 노래가 나왔을 때 나는 칠판 전체를 가로지르는 큰 강줄기를 그려 내가 보았던 인도 갠지스강 이야기를 해주며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는 질문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멸치잡이 노동요를 부를 때는 직접 멸치를 잡아 올리는 어부가 되어보는 상상을 하며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은 특이할 법도 한 나의 수업 시간에 눈을 반짝이며 집중했고, 내 얼굴을 그린 그림이나 쪽지나 편지들로 자신의 마음을 전해주곤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것 같은 기분이 좋았다.

함께 발령받은 동갑내기 교사 친구들과는 쿵짝이 잘 맞았다. 열정적으로 수업하시는 좋은 선배 선생님들도 있었고, 너그럽게 후배 교사들을 챙겨주시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나도 학생들과 동료 선생님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학생들을 위한 마음 탐색 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했고, 방과 후에는 선생님들을 위한 요가 수업을 만들어 피곤한 몸을 함께 풀었다. 나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느낌은 오래가지는 않았다.


당시 내게 주어진 업무는 당시 갓 도입된 교원평가 업무였는데 교사들마저 등급화하는 제도는 숨통을 조으는 느낌이 들었다. 그 뿐 아니라 날마다 자꾸만 늘어나는 행정 업무와 사무업무 때문에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할 시간도 없었고, 때때로, 아니 자주, 수업 시간까지 침해받았다.


당시 내가 있던 교과실 창문 한 편에는 작은 화분에서 시들어가는 식물이 있었는데, 나는 화분을 분갈이 해주듯 더 넓은 곳에 뿌리를 내리며 나의 창의력을 꽃피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환경에서 힘든 것은 교사뿐만이 아니었다.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고학년이 되어갈수록 무언가에 짓눌린 듯한 표정과 무거운 몸을 끌고와 억지로 책상에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2년 차 교사일 때부터 영어를 가르쳤는데, 방학을 마치고 와서

“How was your vacation?”


이라는 질문에


“Terrible.”


이라는 답변과 함께 방학 내내 입시 학원을 다녔다며, 울상을 짓던 아이들의 생기 잃은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되는 입시 경쟁 안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불안해했다. 수업 시간에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떠는 아이나 틱 증상을 보이는 아이, 교실을 돌아다니는 아이들은 온몸으로 불안하다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떤 날엔 손끝으로 자꾸만 책상을 내리찍는 아이가 있어서, 교실 밖으로 잠시 불러서 이유를 물어봤더니.


“게임을 할 때 적들을 죽이는 것이 재미있어서 자꾸만 하고 싶어요.”


라는 답변을 해서 놀랐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게임이나 스마트폰 등에 중독이 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이에게 비춰 져 마음이 아팠다.


어떤 아이들은 수행평가나 시험만 본다고 하면 울었다. 한 개 이상 틀리면 엄마한테 혼난다고 벌벌 떠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잘 하지 못해도 괜찮다.”


고 아이들을 자주 안아주고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하며 공부에 부담을 안 주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오랜 위안이 될지 알 수는 없었다. 이처럼 내가 아이들의 마음에 대해 잘 물어보고, 들어줘서인지, 종종 아이들은 내게 찾아와 자신의 상황과 마음을 이야기하곤 했다.


어떤 날엔 주로 말썽을 일으키던 한 5학년 남자아이가 아빠가 돌아가시고, 아픈 엄마와 사는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이 겪은 충격과 아픔과 슬픔을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관심을 받고 싶어서 친구들을 괴롭히고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했다. 나와 얘기를 나눈 뒤에 아이의 행동은 놀랄만큼 달라져 그 다음 해에 반장이 되기도 했다.


어떤 날엔 시험 성적 등의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한 5학년 아이가 찾아와 손을 벌벌 떨며


“선생님, 죽고 싶어요.”


라는 말을 했다. 당시 5학년. 11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이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말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도 때때로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토록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죽고 싶은 걸까?’


이처럼 학교 현장에서 여러 아이들을 만나며, 나는 아픈 아이들 뒤에는 아픈 부모가, 아픈 부모 뒤에는 아픈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욕망과 비교와 경쟁을 기반으로 한 사회가 우리 모두를 얼마나 불행하게 하는 지가 느껴졌다. 이처럼 깊이 연결되어 있는 고통의 뿌리를 마주하며, 나는 거대한 고통의 파도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을 돕고 싶었지만, 제대로 된 방법을 몰라 함께 고통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