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나의 꿈은 외교관이었다. 재수를 하고서도 목표했던 대학에 합격하기 힘든 성적표를 두고서, 점수에 맞는 대학을 찾다 보니 교대가 있었다. 아빠가 넌지시 교대에 넣어볼 것을 권유하셨다. 경기 불황으로 공무원과 교사가 장래 희망 1순위를 찍었던 시절이었다. 당시 발간되던 시사 잡지에는 ‘교대 열풍’이라는 제목의 표지가 났다.
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대기업을 다니거나 다른 학교에 다니다가 다시 입학을 한 언니, 오빠들도 있었다. 그들처럼 나보다 조금이라도 일찍 세상과 사회를 경험한 이들의 선택이 맞겠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게 맞나?’ 하면서도 수업은 열심히 들었다. 초, 중, 고등학교에서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습관은 쉽게 변하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교사는 초등 교과에 있는 전 과목을 가르쳐야 하기에 배우는 과목들도 많았다. 단소, 리코더, 피아노, 현대무용, 발레, 배구 등 실기 과목도 많았다. 잡기에는 능해졌지만, 교대를 졸업하고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일반 대학에 비해 인원은 적고, 건물도 작아서 고등학교를 한 번 더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때때로 답답했지만 다른 길을 살피기엔 너무 늦은 것만 같았다. 어른들의 말처럼 대학생이 되면 입시 이후로 유예했던 행복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더 혼란스럽고, 종종 길을 잃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나를 바꾼 것은 대학교 2학년 첫 교생 실습에서 만났던 아이들이었다. 별처럼 눈이 빛나던 아이들은 자꾸만 몸과 고개를 돌려 뒷자리에 앉은 교생 선생님들을 바라보았다. 당시 내가 들어갔던 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는 수업 시간에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책상 사이와 교실 뒤쪽으로 계속 돌아다니던 아이와 다크 써클이 얼굴 아래까지 내려와 어두운 표정을 짓던 아이가 있었다. 담임선생님께서 그 아이들이 각각 ADHD와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들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나는 그 두 아이에게 더 시선과 마음이 갔다. 당시 나는 미술교육을 부전공하며 미술치료에 관심이 많았는데,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려서 아이들의 미술 수업을 지도했다. 자신의 마음 속 세상을 그려보라고 하자, 교실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알록달록한 색으로 밝고, 예쁜 그림들을 그려냈다.
아이들의 마음이 그대로 표현되는 그림들ADHD 판정을 받은 아이는 진한 갈색 크레파스를 잡고 종이가 뚫어질 정도로 선을 그었다. 돌아다니지 않고 한 자리에 앉아 꽤 오랜 시간 활동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이는 연필로 늑대를 타고 바위산을 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그렸다. 회색빛의 어두운 느낌이었지만, 또래에 비해 너무나 정교하고 섬세한 그림이었다. 분명 엄청난 재능이었다.
담임선생님께 그 아이가 그 전 해에 교통사고로 부모님 두 분을 잃고, 친척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연을 듣고선 나는 유독 말이 없이 그림만 그리던 아이의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당시 미술교육과 지도교수님께 아이의 그림을 보여드렸는데, 교수님께서 이 아이는 천재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가지고 계시던 미술 도구를 몇 가지 챙겨주셨다. 교생 실습이 마친 후 담임 선생님을 통해 아이에게 그를 전하자, 아이가 그렇게 기쁜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 보셨다고 했다. ADHD를 겪는 아이도 선긋기 등 보다 집중을 할 수 있는 활동부터 하며 많이 안정되었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전해 듣고 덩달아 나도 행복했다. 그 아이들이 아픔과 고통 너머의 재능을 찾아서 꽃피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나는
‘교실에는 여러 다양한 씨앗 같은 아이들이 있다. 어떤 씨앗이 심겨도 다 품고 싹틔울 수 있는 비옥한 대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는 일기를 적었다. 처음으로 내가 이 길을 걷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교생 실습 때 생활 한복을 빌려입고선 전래 동화를 들려주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