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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인 훈육은 가능한 것일까?

by 달리아

훈육은 어렵다. 적절한 훈육의 때와 정도와 기준을 정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게 느껴진다. 쏟아지는 육아서나 육아정보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일관성과 감정조절을 위해서는 부모에게 먼저 훈련이 필요한 것만 같다. 무엇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제대로 된 훈육을 경험해보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지금의 부모들은 여러모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신이 당했던 폭력이나 학대 등을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고자 이를 악물고 애를 써보지만, 그러다 보면 엉뚱한 곳에서 분노가 터져 나오거나, 반대로 진짜 필요할 때 훈육을 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끌려다니게 된다. 그렇다면 과잉보호와 방임 사이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훈육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개인적인 경험으로 훈육, 그리고 육아 전반에서 가장 필요한 일은 부모의 건강과 편안한 마음이 아닐까 한다. 아무리 좋은 육아법이나 훈육 방법을 알고 있다 해도 부모의 몸과 마음이 편치 않을 때 그를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 잠을 잘 못 자거나 끼니를 거르거나 몸이 아플 때에는 누구나 쉽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자신의 몸마음을 추스리기도 힘든 상태에서 누군가를 돌보는 것은 몇 배로 힘들어진다. 그럴 때에는 아이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도 성가시고 거슬릴 수 있다. 어리고 여린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끊임없는 긴장과 피로를 누적시키는 데다, 아이들이 어릴수록 부모의 손이 많이 가다 보니 수면이나 식사를 제 때 충분히 못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픽사베이

나 역시 아이들에게 버럭 하게 될 때를 살펴보면 피로가 누적되거나 아플 때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첫째가 자다가 많이 깨서 거의 밤을 새운 것만 같은 날에는 온몸에 가시가 돋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를 알게 된 뒤부터, 나는 가능한 아이들을 재울 때 같이 자거나 육퇴 이후 밀린 일들을 한다 해도 최대 12시 전에는 자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아침이나 저녁을 먹을 때, 물을 떠 달라던지, 생선을 발라달라던지 하는 아이들의 여러 요구들로 밥을 먹다 흐름이 자꾸 끊기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내가 먼저 든든히 밥을 챙겨 먹고 난 뒤에 아이들을 밥을 차려주고 나니 밥 먹일 때 힘든 점이 사라졌다.


훈육에 대해서 제대로 기준을 세우고 배우기 시작한 것은 어린이집의 부모교육 덕분이었다. 아이들이 다녔던 발도르프 어린이집에서는 입학 선물로 <당신은 당신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입니다>, <무지개다리 너머>라는 책을 주었다. 그리고 그 책들로 한 달에 한 번씩 책모임과 부모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발단단계, 리듬생활, 훈육법 등을 공부하며 서로의 경험을 나누었다.


최근에는 어린이집 엄마들과 <무지개다리 너머>라는 책의 5장인 '창조적인 훈육의 방법들'을 주제로 책모임을 하였다. '창조적인 훈육'이라는 제목을 본 순간,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엄마들과의 나눔을 통해 그 궁금증을 풀어갈 수 있었다.

@픽사베이

이 책의 저자는 '아이들은 어른들과 주변을 모방하며 흡수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을 훈육하는 것에는 자기 수양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특히 발도르프 교육을 창시한 루돌프 슈타이너의 설명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인용한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태어나서 일곱 살이 될 때까지의 아이는 진정으로 하나의 눈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이에게 혹은 아이가 있는 데서 감정이 폭발해서 불같이 화를 낸다면, 아이는 자신의 온 존재 속에 이 분노의 폭발이라는 이미지를 지니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 내적인 이미지는 아이의 혈액 순환과 신진대사 과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른들의 모습이 아이들의 신체와 신진대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그만큼 더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책에서는 우리가 보통 훈육이라고 하면 떠올리게 되는


'꾸짖기, 위협하기, 소리 지르기 등은
어린아이들을 훈육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 명시한다. 이러한 부정적 경험이 반복될 경우,


'아이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장벽을 만들어낼 것이며, 아이들의 마음은 조금씩 무감각해지며,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고까지 얘기한다.


이를 통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명확해졌으니, 그럼 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

발도르프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너무 크게 떠들거나 문제 행동을 할 때 의자나 주변 사물들을 정리하는 등 아이를 둘러싼 공간을 정돈하며 무질서한 행동들이 다시 조화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 돌아보면 아이가 불안정하거나 떼를 쓸 때 주변이 어수선하거나 불안할 때였던 적이 많았던 것 같아 공감이 갔던 대목이었다.


그다음 강조되는 것은 '분명한 메시지들과 선택의 범위 정하기'인데,


'아이들에게 지나친 선택권을 주는 일은 결과적으로 아이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가 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즉,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들의 욕구에 민감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라는 문장에서 요즘처럼 모든 것이 넘치는 세상에서 주어지는 너무 많은 선택권들이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나오는 창조적 훈육의 방법 중 내가 가장 효과를 보았던 부분은 바로 '마법의 단어'라고 표현된


"해주면 좋겠구나"'


이다. 이는 무언가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보다는 부드럽게 아이들의 자발성도 일깨우는 동시에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말할 때 필요한 문장이다. 나는 이를 적용해서 '밥을 먹고, 그릇은 설거지 통에 넣어주면 좋겠구나.' 등을 얘기했을 때 아이들이 실제로 그 행동을 하며 뿌듯해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 외에 가장 내가 '창조적'이라고 느낀 훈육법은 '때리고, 물어뜯고, 할퀴고, 발로 차고, 침을 뱉는 등 수용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다루는 방법이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친구나 주변 사람들을 손이나 주먹으로 때리는 경우, 그 손을 감싸 잡고


"네 손이 따뜻해지고 튼튼해지면, 이 손은 더 이상 누구를 때리지 않을 거야."
"네 손은 부드럽게 사랑을 전하고, 사람들을 돕는 손이야."


등의 얘기를 건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에게 일상에서 여러 일들, 텃밭에서 일하기, 수영하기, 오래 걷기, 운동' 등 몸을 충분히 움직이는 시간을 줄 때 아이들의 혼란스러운 의지가 조화를 이룬다는 것에도 깊이 고개가 끄덕여졌다. 두 아이들을 기르면서 지켜보니 아이들은 아직 언어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서툰 만큼 자신의 의지대로 무언가 안 될 때 손이나 몸을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다. 때때로 그것이 자신과 남을 해치는 방향으로 향할 때, 그를 보다 긍정적이고 창조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어른들의 몫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른이 이야기를 할 때 아이들이 말을 안 듣거나, 떼를 쓰고, 짜증을 낼 때는 어떻게 하는가? 책에서는


'우리가 고요히, 조용히, 중심을 유지하고 있으면 아이는 이 태도를 흡수하여 다시금 안정을 찾게 될 것이다. 아이는 자신을 조절하기 위해 애쓰는 우리의 노력을 흡수하여, 이런 경험을 하면서 아이는 다시 조화롭게 된다.'


고 얘기한다. 이 부분은 훈육에서 부모의 자기 훈련과 수양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더 느껴졌다.


하지만 때때로, 나도 여전히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불완전한 인간인데, 아이들을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 때엔, 주변 엄마들과 선생님들과의 나눔과 도움을 통해 시야와 품을 더 넓게 가지고자 한다. 책에서도 부모가 스스로를 너무 엄격하게 대하지 않기를 강조하며, 부모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애쓰고 노력하는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도 그렇게 노력할 거라는 말이 있어 위로가 되었다.

"모든 부모는 자신의 신경이 닳아 해지고, 에너지가 고갈된 것 같은 상황들을 겪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 노릇이라는 이 도전을 이겨내는 데 있어서 어쩌면 자신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느낀 적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과 도전을 함께 나누는 일을 통해서 선생님과 부모들은 서로서로 격려를 받는 느낌을 갖게 되며, 서로의 경험으로부터 어떤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인용글은 소진되고, 힘든 순간들마다 내게 새로운 힘과 통찰을 주었던 문장이라 다시 담아본다. 아무쪼록 지금 쓰는 이 글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세상의 엄마, 아빠, 모든 양육자분들에게도 힘과 응원이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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