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허벌리스트 강사 선생님께서 이번 주 수업 시간에 풀 약국을 여신 다는 예고를 하셔서 무얼 할까 궁금하고 기대가 되었다. 수업 장소에 직접 가서 보니 허브들을 식물성 재료로 만든 알약에 넣어 천연영양제를 만든다고 하셨다.
그를 위해 가장 먼저 수강생분들과 함께 2주 전 수확해서 말려둔 허브들을 각 종류별로 절구에 넣고 빻고 간 뒤 체를 쳐서 고운 입자로 만들었다. 그 뒤에 민트류를 베이스로 염증에 좋은 톱풀, 간이나 피로해소에 좋은 타임, 감기에 좋은 히솝 등의 허브를 아래와 같은 비율로 섞었다.
박하 애플민트 페퍼민트 1:1:0.5
히솝 0.2
레몬밤 0.2
톱풀 0.2
타임 0.2
세인트존스워트 0.1
허브 가루들을 모두 섞은 뒤에는 캡슐 충진기라는 신기한 도구로 식물성 원료로 만든 알약에 허브가루를 넣고 허브 알약이 만들었다.
마치 소꿉놀이를 하듯 함께 즐겁게 허브 알약을 제조한 뒤에는 숲밭으로 갔다. 1주일 사이 가을이 더 깊어진 풍경 속에서 허브들과 꽃들에 열매와 씨앗들이 맺혀있었다. 이 시간이 지나가면 곧 모든 풀꽃들이 시들고, 겨울이 올 것처럼 느껴졌다. 선생님께서는 서리가 내린 뒤에는 수확이 어려우니 앞으로 1,2주간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고 하셨다.
지난 4월 말에 엄지 한 마디 정도 크기로 잘라서 흙 속에 묻어둔 강황은 마치 바나나 잎이나 열대식물의 잎처럼 넓은 잎을 뻗어내고 있었다.
소란 선생님께서 오늘은 강황을 수확하자고 하시더니 강황 줄기 아랫부분을 두 손으로 잡고 뽑으라고 하셨다. 그렇게 강황 줄기들을 뽑는데, 땅속에서부터 무언가가 쑤~욱 당겨져 나오는 느낌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마치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우리 쪽으로 줄이 당겨져 올 때의 쾌감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선생님께서는 생강과 강황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염증을 제거해 주는 등의 효능이 있어 몸에 가장 좋은 허브에 손꼽힌다고 하셨다. 보통 우리는 카레에 들어가는 노란 강황가루 등만 주로 접하지만, 강황의 뿌리와 줄기를 설탕과 1:1 비율로 청도 담글 수 있고, 밥을 강황 잎에 감싸서 쪄 먹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몇 달간 지켜보고, 직접 수확까지 하는 기쁨은 정말인지 너무도 컸다.
오늘 수확한 강황과 몇 가지 허브들을 방수 장바구니에 조심히 담아 집으로 오는 길,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장을 보신 듯 두 손 가득 비닐을 들고 계신 아주머니께서 버스가 다가오자 아이를 안고 있는 아이 엄마에게 먼저 타라고 손짓을 하셨다. 아이 엄마와 아주머니 뒤를 따라 작은 초록 버스에 올라타니, 버스에 앉아계시던 아저씨 한 분께서 일어나셔서 아이 엄마에게 여기 앉으라며 자리를 양보하셨다.
반대쪽에 노란 노약자석에 앉아계시던 한 할머님께서는 내 장바구니에서 삐져나온 꽃들을 보시더니,
"무슨 꽃이 이리도 이뻐! 자연에서 그대로 가져왔나 봐!"
하시며 감탄하셔서 감사하다고, 잘 가시라고 인사도 드렸다.
낯설지만 가깝게 느껴지는 이웃들의 말과 행동에 왠지 웃음이 나고 가슴이 뭉클했다. 창밖으로 늦은 오후 사선으로 길게 늘어진 가을의 고운 햇살이 작은 버스 안으로 깊숙이 스며들었다. 강황의 단면처럼 노란 그 빛이 남은 한 해를, 다가올 추위를 잘 견디게 해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