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에 재수술을 하신 뒤, 종종 서울에서 뵙는 아버지. 서울역에서 분당 병원으로 가는 빨간 광역버스 안에서 주무시는 옆모습이 내 기억 속 할머니와 닮아계셨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지나 도착한 대학 병원 대기실에는 전국에서 찾아온 환자분들이 가득했다. 모두가 어딘가 지치고, 어딘가 간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얼마 후 간호사 선생님께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셔서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다. 대학 병원 진료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몇 가지 질문과 간단한 검사를 하시던 의사 선생님께서 추이가 좋다며 6개월 뒤에 보자고 하셨다. 뇌혈관 약도 그만 드셔도 되겠다는 말씀에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작년에 아버지께서 서울역 근처에서 쓰러지셨다는 소식에 달려가 응급차에서 내내 싸늘한 손발을 주물렀던 느낌이, 그때 보았던 아버지의 하얀 얼굴이 아직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이제 괜찮으실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내 마음속 걱정과 불안, 그런 감정들을 만든 기억들이 안도감 속에서 녹아내린다.
진료실을 나오며, 진료실 앞의 모든 환자분들과 보호자분들의 몸마음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도를 하고 나니 마음의 공간이 더 커지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와 지하 식당에서 점심 먹고서는 1층 로비로 가니 한편의 그림들이 있길래 함께 사진을 찍으려 하니, 아버지께서
"와 사진을 찍을라하노?"
물으시길래,
"좋아서 그러지."
라고 대답한 뒤 핸드폰을 켠다.
여전히 사진 찍기가 쑥스러우신 듯 하지만 눈도 크게 뜨시고, 한 팔로 내 어깨도 다정히 둘러주신다. 사진 속에서 지난번 진료 후 찍은 사진에서 보였던 왼쪽 얼굴 마비증상이 잘 안 보여서 나는 다시금 안도한다.
서울역에서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호두과자랑 따끈한 두유도 챙겨 드리는데, 굳이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 2장을 꺼내시길래, 나도 다 컸다고 손을 휘휘 젓는데,
"아~들(경상도 말로 아이들) 맛있는 거 사주라!"
시길래, 못 이기는 척 받았다.
이 돈은 최근 꾸지뽕 열매를 한 알 한 알 따셔서 버신 귀한 돈임을 알기에. 그것은 꾸지뽕 열매보다 붉은 사랑이기에. 나는 아마 이 돈을 오랫동안 지갑 속에 품고선, 아버지를 생각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