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벌리스트 강사 선생님께서는 강황잎으로는 밥을 감싸 쪄서 먹을 수 있고, 뿌리와 잔뿌리 줄기는 썰어서 설탕과 1:1 비율로 강황청을 만들어 보라고 하셨다. 집에 와서 강황의 효능을 찾아보니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면역력을 높여주는데 특히 좋다고 한다. 문득, 손이 무척 차가워서 겨울에 두꺼운 장갑을 끼고 다니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염증이나 어혈에 좋다는 자료에서는 지난 달 교통사고로 입원하셨던 어린이집 선생님도 떠오른다.
나는 귀여운 노란빛 꽃들이 새겨진 유리병 두 개를 꺼내서 끓는 물에 소독하여 말려둔다. 그 사이 강황에 붙어있는 흙덩이들도 깨끗이 씻어낸다. 흐르는 물에 엉켜있던 잔뿌리들이 가지런해진다. 체반에 씻은 강황 줄기 밑둥과 뿌리들을 잘 담아두고선 찬장 속 유기농 설탕을 꺼낸다.
병의 물기가 마르는 사이, 인도를 다녀온 친구가 사다 준 레몬홍차에 귀리우유를 넣어 진하고 뜨거운 밀크티 한잔을 우려 마시고선 힘을 내어 밀린 집안일들을 한다. 월말이 다가와 여러 공과금 결제와 처리할 일들이 꽤 쌓여있다.
일들을 마치고선 다시 식탁으로 가서, 뒤집어 두었던 병을 바로 두고 강황을 얇고도 작게 썰어 넣는다. 강황을 한 층 쌓고, 같은 양의 설탕을 붓고 하다보니, 두 개의 병이 금세 가득 차오른다. 설탕이 물처럼 다 녹고, 강황의 샛노란빛이 병을 채우고나면 뜨거운 물에도 차처럼 타서 마시고, 요리에도 넣을 것이다. 몇 병 더 담아서 선물까지 할 생각을 하니, 가슴 가운데에서 해가 떠오르는 듯, 마음이 밝고 따뜻해진다.
노란 가을빛을 가득 담은 강황청을 마시고 또 나누다보면 춥고 어두운 겨울도 든든히 잘 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지난 봄 심었던 엄지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강황이 이토록 튼실하고 풍성하게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며, 성경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요한복음 12장 24절
한 알의 씨앗이 땅에서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역설의 의미를 더 생생하게 느끼고, 새겨본다. 나라는 껍질을 벗어내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그 길에서 많은 열매들을 맺고, 또 나누는 삶이 되기를, 오늘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