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한 언니가 무농약으로 키웠다는 샤인머스캣 한 박스를 보내주었다. 너무나 달고 맛있는 포도를 잔뜩 먹고선 아이들과 티라미수를 만들었다. 며칠 전 생신이셨던 글방 선생님을 위한 케이크였다. 오늘 오전 글방모임에서는 케이크도 전달하고선, 오후엔 한 달간 공감수업을 진행했던 교실의 아이들과 선생님을 위한 작은 선물도 전했다.
집을 나서는 길에는 큐티 시간을 가졌고, 집에 돌아오는 길엔, 가을이 완연한 경의선숲길을 걷다가 색감이 예쁜 카페에 앉아 기쁘게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밖으로 사랑을 나누고, 전하고, 그만큼 안으로 나를 돌보고, 충전하는 선순환의 흐름 안에서 지치지 않고 나아가는 힘이 나온다.
오늘 4회기 수업을 마무리하고선, 교실에 남아 담임선생님의 손을 꼭 잡았다. 진정으로 행복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도 한 권 전해드렸다. 발령받으신 지 3년 차이신 선생님을 뵐 때마다 10여 년 전의 내가 겹쳐졌다. 그 당시 내가 가졌던 학교의 구조와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 대한 회의감과 혼란이 떠올랐다. 그즈음 파커 파머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등의 책들을 읽으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 더 집중을 했다.
소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내면의 목소리는 나와 내 삶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치열하게 질문하고, 배움을 구하며, 다른 사람이 아닌 나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무엇보다 직간접적으로 죽음을 대면하는 시간들을 통해, 내가 내일 죽는다면 오늘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실천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가 이 생에 무언가를 꼭 배워야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몇몇 아이들이 따라 나와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어떤 아이는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학기 수업을 했던 1학년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나를 보고선 두 팔을 벌려 안겼다. 그 아이들 모두가 나의 아이들처럼 귀엽고, 소중하고, 사랑스러워서 자꾸만 안아주고 싶다.
저녁을 차리기 전, 사랑을 받고 또 전하는 흐름 속에서의 하루를 돌아보며, 좋아하는 글 한 편을 찾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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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세상에 풀어놓은 사랑은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다고
그러니까 당신은 깊이 음미하며 노래를 부르세요.
신나게 맘껏 춤을 추세요
하루하루를 정성스레 살아가세요
그리고 사랑할 때는 마음껏 사랑하세요
설령 당신이 상처를 받았다 해도
그런 적이 없는 것처럼
먼저 당신이 사랑하세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당신과 다른
모든 이들이 진정으로 나, 그리고 우리가 이 마을을 사랑해야 함을 알고 있다면 정말로 아직은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갈라놓은 비열한 힘으로부터 이 마을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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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데에도, 사랑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한 시대이다.
미세먼지가 가득한 공기처럼 혼탁한 세상을 살아가며, 나는
"사랑이 뭐예요?"
라는 질문에
"사랑은 다른 사람이 고통받지 않고, 행복하길 바라는 말과 마음과 행동입니다."
라고 돌아온 답변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그 대답을 들었던 곳에서 나는 마치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내쉬는 나무처럼, 타인의 고통을 들이마시고, 사랑을 내쉬는 연습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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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말과 행동, 내가 먹는 마음이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고, 사랑을 전하는 것이길 기도한다.
실망하고, 좌절하고, 오해받고, 상처받고, 힘든 일이 있도 있었지만, 나는 결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을 포기한다는 건, 사람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내 품에 뛰어드는 아이들을,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결코 포기할 수 없으니,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며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