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에 아이들을 등원시키는 길에 일찍이 숲밭으로 향했다. 퍼머컬처 수업에서 허브 씨앗들을 받는 날이라고 하셔서 하루 청강하기로 한 것이다. 어제는 미세먼지로 숨쉬기가 힘들었는데, 오늘은 날이 청명해서 먼 산들과 하늘이 선명하게 보인다.
밭에 도착하니, 퍼머컬처를 수강하시는 선생님들께서, 떡이며, 전이며 먹거리를 잔뜩 주신다. 자연 속에서 무언가를 돌보고, 기르는 분들은 나눔도 자연스럽다. 여러 씨앗들을 봉투마다 나누어 모으고, 주변에 선물할 꽃들과 야채들을 수확하는데, 한 선생님께서 아이들과 먹으라며 샐러드거리를 쥐어주신다.
한 움큼 가득한 사랑이 전해져 왔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몇 달째 보도블록 교체 공사 중이라 땅만 보고 걸었었다. 돌들을 갂으며 일어나는 먼지 때문에 코와 입을 막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그렇게 하늘 볼 일 없이 걸음을 옮기다 보면 계절을 잊게 된다. 바닥의 은행잎과 은행알을 보고선 '이제 가을이구나'... 싶었는데, 가을이 곧 떠날 것만 같다.
끝까지 무르익은 아름다움을 제대로 누리지도 보내기엔 너무 아쉽다. 다행히 오늘은 나비처럼 숲밭을 누비며 메리골드, 산국화, 코스모스 등 가을꽃들의 색과 향을 가득 담는다. 풀들과 꽃들 사이로 손과 얼굴을 묻고 있다가 고개를 들면 온통 파란 하늘과 자연이 그림처럼 펼쳐져있다.
허벌리스트 수업을 듣기 전에른, 땅을 이렇게 가깝게 자주 보기 전에는 치커리의 보라빛 꽃이 이렇게 고운지도, 가을에도 민들레와 부추를 수확할 수 있는지도, 산국화의 향기가 이토록 진한지도, 풀과 꽃들이 시들어가며 씨앗을 남기는 모습도 알 수가 없었다. 숲밭에 올 때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배워왔던 공부 중에 이처럼 재미있고도 유용한 공부가 또 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이다.
오늘 내가 눈과 코와 온 몸으로 마주한 것은, 정말 사진에서처럼, 입이 저절로 떡 벌어지는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 안에서 나는 최대한 숨을 깊이 들이쉬며, 최대치의 가을을, 최대치의 아름다움을 온몸 가득 담는다.
이 깊고도 따스한 빛을 마음 가득 담아두었다가, 시리고 어두운 겨울밤에 날숨처럼 내쉴 수 있도록, 지금도 겨울을 살고 있는 누군가의 가슴에 잘 전할 수 있도록, 고이고이 잘 저장해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