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사람을 어떻게 돌보는가?'
글을 쓰고 읽는 이유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라는 그림책은 아름답고도 여운이 깊은 책이다. 작가이신 조던 스콧 시인님은 어릴 적부터 말더듬을 겪으셨는데, 어느 날 작가의 아버지께서 강물로 데려가셔서 하신 말씀과 자신의 경험을 글로 담았다고 한다.
이번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 시인님께서 오신다는 반가운 소식에 얼른 신청을 했다. 긴 추석 연휴 끝에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몸은 피곤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행사장으로 향했다.
합정역 바로 앞이라는 좋은 위치에 전시장과 야외 공간과 강당까지 있는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라는 장소가 있었다. 마티즈의 '댄스' 시리즈를 오마주 하여 만들었다는 포스터부터 눈에 확 띄고, <새로이, 돌봄>이라는 축제의 주제도 마음에 들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신청 확인 데스크에서 프로그램 일정 자료와 함께 머그잔을 선물로 주셨다. 초록빛 아름다운 조명이 인상적인 무대가 있고 객석은 금방 만석이 되었다.
<강물처럼 말해요>라는 그림책을 좋아해서 신청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이 책을 비롯해 수많은 그림책들을 번역하시고 아동문학평론을 하시는 김지은 평론가님께서 사회를, 여러 문학상을 받으시고 현재 서울예대에서 문학을 가르치시는 소설가 정용준님께서 또 다른 패널로 나오셨다.
알고 보니, 김지은 평론가님께서 이 책을 번역하던 때에 말더듬의 자전적 경험이 담겨있는 소설인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읽으시며, 비슷한 경험을 한 두 작가님이 만나시길 꿈꾸셨고,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고 하셨다.
김지은 평론가님은 깊고, 따뜻한 시선으로 두 작가분의 작품들을 명료하게 소개하고 전달해 주시며, 여러 의미 있는 질문들로 전체 진행을 아름답게 이끌어주셨다.
정용준 작가님께서는 실제로 작가님은 동생의 죽음을 목격한 뒤로 말더듬이 시작되었고, 그 경험을 담은 <떠떠떠떠>, 그리고 자폐성향을 지닌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선릉산책> 등을 쓴 작가이기도 하며, ‘나는 소설을 만나 더 나은 입술을 가졌다.’고 표현한 바 있다고 하셨다.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픽션을 쓰는 것에 대해 평론가님께서 질문을 하셨을 때, 독자들은 픽션을 읽으면서 이것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작가의 경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진실의 영역을 찾는다고 답변을 하셨다.
또한 <내가 말하고 있잖아>라는 책에서 말더듬의 경험과 교정 과정이 나와있는데, 말더듬이 시작됐을 때, 친구들이 놀리고, 배제하고, 힘들게 했을 때 자신이 위축되고, 고립되고, 슬프고, 화가 났으나, 그 경험이 무엇인지 몰라 막연하고, 불안하고, 두렵기까지 했다고 하셨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경험하는 것, 경험했던 것이 무엇인지 아는 작업이며, 작가가 살기 위한 수단으로 자전적 글을 썼을 때, 설명할 수 없는 진실, 진정성 등이 독자의 직관적 경험으로 다가가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 후 평론가님과 작가님들께서 나누었던 인상적이었던 질문과 답변은 아래와 같다. (녹음이 아닌 노트 기록을 바탕으로 기록한 것으로 문장 등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며, 평론가님의 질문은 'Q ', 답변으로 조던 스콧은 '스'로, 정용준 작가님은 '정'으로 표현했습니다)
Q.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어린이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주신다면?
정) 아이들은 이미 그림일기 등의 쓰기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스스로 글을 쓰고 싶은 날이 오면, 겪었던 일을 흐름과 인과를 생각하며 쓰고, 거기에 글쓴이의 마음과 느낌을 더했으면 합니다. 특히 느낌 쓰기는 어려운 작업이긴 하지만 자신만의 언어로 창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스) 저는 아이들과 캠핑, 카누, 하이킹 등의 활동을 자주 하는데, 다녀와서 아이들이 ‘곰이 샌드위치를 먹었다.’ 등의 글을 쓰면,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마치 취조를 하듯, ‘그것이 진짜 있었던 일이냐?’고 물어보고,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저는 아이들의 글에 대한 그런 평가는 구겨버리자고 합니다. 글을 쓸 때는 규칙 없이 쓰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유롭게 상상한 것을 쓰고, 창조성을 위해 실제로 그것이 일어난 일인지 아닌 일인지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Q. 발화의 어려움에 대해 나눠주시겠어요?
정) 힘들지만 그래도 하는 것, 말로 마음, 감정, 사과, 고마움 등을 전하기 위해 가치 있는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스) 더듬는 것 양날의 검입니다. 말더듬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단어를 모든 곳에서 느끼고,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느껴갑니다.
정) 방금 하신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저는 말더듬으로 더 친밀하게 언어를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언어교정원에 다니며 말더듬을 거의 교정했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아무렇지 않게 봐주는 가족이나 편한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더듬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말더듬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말을 더듬을 것 같은 단어는 피해서 쓰는 등 말더듬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제가 너무 어려운 것은 책 읽기인데, 쓰인 글을 그대로 읽을 때엔 단어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을 많이 더듬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언어를 생물학적으로 경험하며 생각하고 감각했기에 소설가가 된 것 같습니다.
스) 지금 말씀하신 부분에서 깊은 차원에서의 연대감을 느낍니다. 저도 말더듬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거나, 아닌 척하다 지쳤습니다.
Q. 사람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면 좋을까요?
스) 어릴 때 저희 어머니께서는 저를 사랑하긴 하셨지만 제 말더듬을 고치려고 웅변학원 등에 데리고 갔습니다. 무대에 서서 말을 더듬지 않고 말하기 위해 거울 앞에서 연습을 하곤 했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서는 말더듬 단어 쓰지 않으셨고 그를 다른 차원 수용해서 있는 그대로 모습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원에서 문학을 배울 때 존경하던 시인이셨던 교수님께서 매주 시를 써오는 과제를 내주시고 그를 수업 시간에 읽게 하셨습니다. 저는 일부로 시를 깜빡한 척 안 챙겨 오다, 어느 날엔 교수님께서 미리 시를 준비해 두셨다고 수업 시간에 읽으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읽는 연습을 전혀 못했기 때문에 저는 시를 더듬거리며 읽었는데 시 읽기가 끝나자, 교수님께서는 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시며
"That was beautiful!"
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더듬는 것을 아름답다고 들은 것은 처음이었고, 그것이 제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정) 사랑이라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를 행동이나 행위로 실행한다면 그것이 돌봄인 것 같습니다. 다른 대상의 연약함을 보고, 인지하고, 약함을 약하게 보지 않으면서 손을 내미는 것이요.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돌봅니다. 저는 요즘 세상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나 민원 등의 일들을 보며, 서로가 짠하게 보지 않고 나를 제일 불쌍하게 생각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화를 내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도 참 힘들겠다.'라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Q. 문학은 사람은 어떻게 돌보는지요?
스) 더듬는 사람이 문학 속의 캐릭터 등을 통해 그것이 독자로 하여금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 소외감이 아닌 소속감을 주며 돌봄 문화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정) (관객들에게 두 팔을 벌려 원을 만들어보라고 한 뒤, 그 원 안에 몇 사람이 들어오겠냐고 먼저 물으시고는) 문학이 독자 만나는 방식이 이와 같습니다. 문학은 한 사람에 집중합니다. 내면 감정의 총체, 진실을 밑바닥까지 쓰인 글은 느리지만 분명한 포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너무나 강력하기에 독자는 그 표현들을 받아들이며, 말하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모든 작가는 읽기에서 태어나고, 모든 문학은 훌륭한 독후감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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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인지 주옥같은 질문과 답변들 속에서 우리가 왜 글을 쓰고, 또 읽는지, 문학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반짝이는 통찰들이 쏟아지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브런치스토리에 계속 글을 쓰는 것도, 또 다른 좋은 작가님들의 글을 읽는 것도 글쓰기와 문학이 지닌 힘을 선명하게 느껴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문학이란 서로를 '이상한 존재'로 낙인찍으며 배척하는 세상 속에서, 다른 것이 틀리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며, 사실 누구나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더듬는 경험을 나누시며 두 분의 작가님들께서 서로에 대한 아주 깊은 차원의 공감과 연대감을 느끼시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나만의 고통 속에 고립되고 소외되었을 때 비슷한 고통을 겪은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다시 숨을 쉬게 되었던 기억이 났다.
오늘 두 분의 작가님, 그리고 평론가 선생님과의 시간은 내게 계속 글을 써나갈 수 있는 깊은 영감을 주었고, 이는 오래도록 내 안의 글에 대한 열망의 불씨를 키워줄 것만 같다.
앞으로 읽고, 쓰는 글들을 통해, 조던 스콧 시인님의 아버지나 대학원의 교수님처럼 모든 존재를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보며, 그 안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비춰주는 사람으로 빚어질 수 있으면 하는 소망도 든다.
이 글을 통해 대담 속에서 흐르던 반짝이는 윤슬같은 순간들이, 나와 같은 질문과 마음을 품고 있는 많은 분들께 전해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