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 작가들의 글들을 읽었다. 거침없고도 매끈한 표현들에, 글을 보는데 마치 재미있는 영상을 보듯 몰입이 되었다. 글은 이러고 저래야 한다는, 내 안의 여러 틀들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만의 힙한 느낌 안에는 자신만의 삶을 찾고자 부단히 노력해온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단단하고도 깊은 중심과 내공이 느껴졌다. 그 비법이 궁금해서 검색을 하다 그들이 다녔다는 글방을 찾았다.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이미 마감된 강좌에 대기를 걸었다. 등록을 위한 설문지에는 자기를 소개하는 란이 있었다.
오랜만의 자기소개에 갓 입학한 신입생처럼 쑥스러운 표정이 지어졌다.
'지금의 나를 몇 문장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두 아이의 엄마'라는 표현이 가장 먼저 튀어나왔다. 그만큼 엄마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부분이 커서일 것이다. 어릴 적부터 글을 써왔지만, 엄마가 되고 나서 쓰는 글은 뭔가 다른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결혼한 뒤, 어느새 8년 차 주부가 되었다. 그 사이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며 가장 달라진 건, 매끼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고 차리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혼자 살 때에도 요리에 관심이 많긴 했지만 매일 잘 챙겨 먹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크는 게 눈에 보이는 어린 생명들에게는 절로 온갖 정성들을 쏟게 되었다. 이유식에서부터 재료부터 꼼꼼히 따져 매 끼니 가능한 다른 재료로 골고루 영양소에 맞는 밥상을 고민했다.
그렇게 매일, 몇 달, 몇 년이 흐르다 보니, 이제는 밥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고, 몸에 베인 습관이 되었다. 하루에 국이나 찌개 한두 가지에, 반찬을 차리기 위해 장을 보고, 재료를 남기지 않고 요리를 하는 것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나의 하루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서, 요리하는 시간에 어느 때보다 마음을 모았다. 내 앞의 음식 재료들 안에 담겨있는 자연과 손길들을 느끼고, 감사하며, 채소와 야채들을 다듬고, 맛의 조화를 생각하며, 무엇보다 먹는 사람들이 건강하기를 하는 마음을 담는 기도를 담았다.
그래서일까. 내가 차린 밥상이나 요리를 먹는 사람들이, 밥이 약 같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
아이들이 "엄마가 해준 음식은 언제나 최고야!" 하면서 엄지를 척척 들어줄 때엔, 세상에 더 바랄 것 없는 충만한 행복을 느낀다.
그러면서, 문득, 밥을 짓듯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릴 때 들었던 글짓기 수업이라는 표현에서처럼, 글도 밥처럼 정성스레 지을 수 있는 것이었던 것이다! 내 삶의 경험들을 재료로 삼아, 그를 정갈하게 다듬고, 조화롭게 담는다면 글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부르게 할 수 있는 밥이요, 약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흔히 쓰는 표현으로, 글은 곧 그 사람의 세계이다.
(Word is World)
귀한 인연에게 오늘 받은 손편지에서 축복이 가득 담긴 문장들이 선물처럼 깊이 전해졌다.
'어떻게 더 사랑하고 싶어서,
어떻게 더 나눌까 싶어서,
그 마음으로 세상을 사람들을 온 생명들을
늘 감싸 안고 또 쓰다듬는
예쁘고 예쁜 달리아에게....... 내내 어여쁘소서.'
나의 세계를, 나의 마음을, 나의 삶을,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오롯이 이해해주고, 축복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하고 감사한 일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이해와 지지와 응원이 되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나의 글에는 90년대생 작가들처럼 생생하고 펄떡이는 힘은 없다해도, 엄마로 살아가며 어리고 여린 생명들을 살리고 지키고 사랑하고자 하는 그 애틋한 마음이 담길 수 있으면 한다. 무엇보다 읽는 사람에게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밥상 같은 온기와 든든함을 전할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가슴에 품고, 내내 부지런히 밥을 짓고, 글을 짓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길 기도하게 된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가 강줄기가 되어 흐르는 밤, 이 세상의 많은 아픔들과 고통들이 씻어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들이 피어나기를... 갓 지은 밥을 퍼듯, 가슴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기도를 글 안에 꼭꼭 눌러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