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과외를 소개받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여자 아이의 숙제 등을 매일 두 시간 정도 봐주면 되는 과외였다. 과외비는 교사의 초봉 월급과 비슷할 정도로 많았다. 숙제를 봐주면 되는 단순한 업무에 비해 넘치는 과외비를 지불하는 것에 궁금증이 생겼다. 며칠이 지나 과외를 하게 된 주상복합 아파트에 도착했는데, 입구와 로비가 고급호텔처럼 화려했다. 연예인들이나 유명 기업 사장도 사는 곳이라고 했다. 검은색 양복을 입은 젊은 경호원이 방문 목적과 호수를 물었다. 몇 번의 보안을 거쳐서 겨우 집에 도착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픽사베이 첫인상이 귀여웠던 9살 여자 아이는 나와 수업을 하기보다는 놀기를 원했다. 이미 주요 과목 수업과 예체능 과외는 모두 따로 받고 있었기에, 아이는 늘 지쳐있었다. 나는 아이의 고단함을 풀어주고자 숙제를 봐주고 수업이 끝난 뒤 시간을 내어 아이와 함께 놀아주곤 했다. 어느 날엔 근처에 있던 아쿠아리움에 놀러 갔다. 집에서 무척 가까운 거리였는데, 아이는 몇 년간 이곳에 살며 처음 와본 곳이라며 종종거리며 기뻐했다. 오랜만에 아이가 밝게 웃는 모습에 나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 뒤에도 아이는 숙제를 끝내고 아쿠아리움에 또 가고 싶다고 졸랐다.
아쿠아리움 입장료가 비싸서 자주 갈 수는 없다는 내 말에 아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전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선생님, 왜 돈이 없어요?”
그러더니,
“저 돈 많아요. 제 돈으로 가요.”
라고 말하며, 자신의 지갑을 열어 보여주었다.
9살 아이의 지갑 속에서는 족히 30만 원이 넘는 현금이 들어있었다. 내 지갑 안의 돈보다 훨씬 많은 액수였다. 그것을 본 나의 눈도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고 보니, 아이의 방에는 모든 것이 넘치게 있었다. 문구류나 책이나 인형, 물건들도 자리가 없어 쌓아놓아야 할 정도로 가득했다.
어떤 날에 아이는 엄마와 쇼핑을 다녀왔다며, 300만 원어치의 옷과 신발을 샀다고 했다. 300만 원은 당시 내 통장 속 잔고보다 많은 액수였다. 한 벌에 수십 만 원이 넘는 옷과 신발을 아무렇지 않게 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많은 물건들 속에서도 아이는 만족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가 신고 온 반짝이 구두가 부러워서 새로 구두를 사고, 색색깔의 펜도 종류별로 있었지만 매일 문구점에 가서 계속 새로운 펜을 사 모았다. 아이는 내게 자주 안아달라거나 업어달라고 했고, 늘 마음이 허전하고 불안해 보였다. 나는 그 아이가 이처럼 넘치도록 풍요로운 물질 속에서 왜 점점 더 결핍을 느끼는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와 반대의 경험을 한 것은 친구와 함께 배낭여행으로 떠났던 캄보디아에서였다.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엔립의 숙소에서 김형욱 작가님을 만나게 되어 작가님이 돕고 있는 근처 학교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학교라고는 했지만, 지푸라기로 만든 지붕 아래 흙바닥 위에 책걸상이 몇 개 놓여 있는 것이 다였다. 그런 교실 환경에서는 비바람이 불면 당연히 수업이 어려웠고, 많은 아이들은 맨발로 교실 안팎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학교에 교사와 교재 등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친구와 함께 상의하여 여행 일정을 조정하여 캄보디아에 있는 동안 매일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기념품을 사려고 했던 돈으로 아이들의 책과 연필, 지우개 등 문구류를 샀고, 여행 경비 중 일부를 덜어 아이들을 위한 특식으로 스파게티 재료 등을 구입하였다.
아이들과의 수업 시간 @김형욱 작가님 학교 측에서 부탁해서 우리가 맡은 수업은 기본 영어 회화와 알파벳 파닉스였다. 나는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간단한 캄보디아 말과 단어들을 배워서 그를 영어로 알려주기로 했다. 파닉스 수업을 위해 TV나 PPT 등 미디어 자료 등을 활용할 수 없었기에 직접 종이와 크레파스로 정성껏 수업 자료들을 만들었다. 쌍꺼풀이 진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로 외국인 선생님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아이들은 내가 만났던 어떤 아이들보다 모든 수업에 집중하였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온몸을 바짝 당겨 앉아, 내가 하는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고, 쓰고, 그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도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학생의 수업 태도에 따라 교사의 열정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그곳의 아이들 중에는 부모가 없는 고아도 많았고, 대부분 신발도, 문구류도, 교과서 등의 책도 부족했으며, 제대로 된 교실조차 없었지만, 누구보다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것들을 아끼고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았다. 하루종일 마을 곳곳을 친구들과 함께 누비던 아이들은 나와 친구가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우리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두 팔을 벌려 달려와 우리를 꼭 안아주었다. 그 자그마한 품들은 너무나 따뜻했고,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했으며, 아이들의 눈빛은 너무나 맑아 내 얼굴이 그대로 비쳤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오히려 사랑을 받고, 또 배우는 느낌이 들었다.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며 충분히 뛰어놀고, 부족한 환경과 물질 속에서도 감사함을 아는 아이들에게서는 펄떡이는 건강함과 순수한 행복이 느껴졌다. 그러한 느낌은 그전에 내가 만났던 한국의 아이들에게서는 거의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처럼 상반되는 경험들을 통해 나는 돈과 물질이 많다고 해서, 많은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결코 행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풍요 속에서의 결핍’, ‘결핍 속에서의 충만함’이라는 역설이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교육과 환경에도 적절한 균형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조기교육과 사교육 등 우리나라의 교육 시장이 ‘불안’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아이들 사이에서도 명품 가방이나 옷, 액세서리 등이 유행하고, ‘빌거지, 휴거지, 엘사, 월거지’ 등 서로가 사는 곳으로 노는 그룹을 나누고 비하하는 표현이 등장한 것을 보고 돈과 물질이 만능으로 통하는 이 세상의 부조리가 아이들 사이에서도 만연된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안에서 대다수의 학생들이 불안하고 불행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처럼 더 많은 아이들이 돈과 물질의 노예가 되기 전에 풍요 속에서 우리가 진짜 잃고 있는 소중한 가치들을 돌아보고 되살리는 것은 매우 시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