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생 실습에서 만났던 아이들은 내게 ‘웃음꽃 선생님’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한 아이는 자신이 오랫동안 웃음을 잃고 있었는데, 내 덕분에 웃음을 찾았다는 편지를 써서 주었다. 나는 그 편지와 별칭을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했다. 삶의 목표가 바뀌었던 순간들이었다. 아이들의 웃음과 재능을 꽃피우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졸업을 하고 발령을 기다리며 시간 강사를 하거나 여행을 하면서는 더 다양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만나 친해졌던 티베트 동자승들과 함께 한 달 동안 수업을 하게 된 어떤 3학년 학급에서 한 아이는 보조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있었다.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라서 일반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고 언어 발달이 지연되어 말이 어눌하다고 했다. 그 아이는 도수가 매우 높은 안경을 쓰고 있었고, 가끔씩 몸을 가누기 힘들어했으며, 수업 시간 중에 엉뚱한 말을 하기도 했다.
몇 년 전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랑만 살고 있다는 아이의 배경을 듣고 그 아이에게 더 마음이 가서 매일 눈을 마주치며 인사도 나누고, 아이가 그린 그림이나 활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칭찬을 해주곤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수업을 하고, 같은 학교의 다른 학급으로 시간 강사를 갔을 때였다. 쉬는 시간에 멀리서 나를 발견한 아이는 멀리서 내게 뛰어오더니 내게 안겨서
“엄마, 엄마, 엄마!”
라고 여러 번 외쳤다. 그를 본 같은 반 친구들이 함께 우르르 몰려와 내게 안겨 다 같이 입을 모아
“엄마, 엄마, 엄마!”
라며 온 복도가 가득 울릴 정도로 외쳤다. 당시 20대 중반의 나이었던 내게 엄마라는 단어는 친숙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 존재인가를 느꼈다.
그 후로 만났던 어떤 아이들은
“선생님은 따뜻하고, 부드러워요. 선생님이 엄마였으면 좋겠어요.”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작고 여린 새싹 같은 아이들에게는 망망대해와 같은 막막하고도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언제라도 자신을 품어주고, 지지해 주는 크고 따뜻하고 보드라운 품이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만날수록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절대적으로 믿어주고,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고, 사랑하는 엄마 같은 존재가 있다면 그 누구도 삶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피워낼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교실 안에서는 엄마나 양육자가 없거나, 너무 바쁘거나 등등 여러 이유로 인해서 그런 품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마치 뿌리가 드러난 듯 사랑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런 아이들이 해마다 늘어만 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내가 만나는 모든 아이들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키워나가고자 했다 내가 만나는 어떤 아이라도, 단 한 명의 아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진실하게 솟아나오는 간절하고도 큰 소망이기도 했다.그리고 그 소망과 기도는 지금껏 내 삶을 계속 이끌어오고 있다.
학교를 나와 여러 여정 후 '마음의 숲 가꾸기'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