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교폭력예방 교육 수업으로 학급에서 수업을 할 때였다. 서로 간의 접촉과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손가락을 맞대며 인사를 주고받거나, 협동놀이를 하며 서로의 손을 잡는 활동들을 할 때마다 몇몇의 아이들이 쭈뼛거리며 내게 물었다.
“선생님, 친구 손 잡아도 돼요?”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학교와 교실에서도 거리를 두는 것이 오히려 익숙해져 있는 것이었다. 초반에는 아예 학교를 못 가고 온라인 수업만 하기도 했고, 학교에 가서도 가림막과 마스크로 서로 간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했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노는 것도 제한된 것이다.
서로 제대로 된 관계를 형성하기도 전에 서로를 경계하고, 거리를 두고, 격리하는 등의 단어나 태도가 익숙해진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그 후유증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정신과의사 하지현 작가님께서는 <포스트 코로나, 아이들 마음부터 챙깁시다>라는 책을 통해
‘예전에는 공감 능력을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대가족 공동체 안에서 이를 배우고 익힐 수 있었으나 핵가족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아이들의 공감 능력을 키울 기회가 줄어들었다. 마스크가 일상이 되면서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이 어려워지고, 대면 접촉을 할 기회가 적어지는 시기에 공감을 경험할 기회가 줄어든다.’
고 하셨다. 급격한 핵가족화에 이어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듦으로 인해 많은 문제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장기간의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코로나 키즈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사람들의 표정을 읽고 입모양을 보는 등의 상호작용을 하지 못해서 언어와 발달 지연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실로 코로나 팬더믹은 우리의 모든 일상을 뒤흔들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재난은 우리 삶의 모습을 많이 바꾸었다. 무엇보다 몇 년 동안 마스크 쓰기, 비접촉의 문화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신뢰와 건강한 애착을 쌓기도 전에 서로 경계를 하고 거리를 두는 것을 먼저 배웠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나고 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새로운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제대로 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키오스크, 인공지능, 로봇 등의 기술의 발달이 우리의 일상에 더 깊이 스며들며 비대면, 비접촉 사회의 분위기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알파 세대라고 불리는 다음 세대 아이들의 특징 중 하나는 아날로그보다 디지털에서의 교류와 소통을 더 쉽고 편리하게 느낀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적절한 대처나 준비 없이 급속도로 일어나고 있어서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개인이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아이들은 관계를 맺고 마음을 나누는 기쁨을 잃어 가고 있으며 여러 마음의 병들을 앓고 있다.
손을 잡는다는 것, 서로의 가슴을 맞댄다는 것은 함께 살아있음을 느끼고,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길이기도 하다.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 교수님께서는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라는 책에서
‘자연계의 모든 동식물을 다 뒤져 보면 손을 잡지 않고 살아남은 동물은 없습니다. 꽃과 벌, 개미와 진딧물, 과일과 먼 곳에 가서 그 씨를 배설해 주는 동물처럼 살아남은 모든 생물들은 짝이 있습니다. 손을 잡고 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며 공생과 공존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신다.
이처럼 우리는 아이들에게 친구들의 손을 잡는 것이 안전하고 필요한 일임을, 즐겁고, 행복한 것임을 차근히 알려주어야 한다. 학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이처럼 서로가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기도 하다. 공감은 우리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법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자 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