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뉴스를 볼 때마다 목구멍까지 감정이 차오르며 숨이 막힌다. 가짜 뉴스였으면 하는 일들이 거짓말처럼 매일같이 일어난다. 최근 학교에서 목숨을 끊었던 서이초 교사가 같은 학교, 같은 학과 후배였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그 고통은 더 이상 지나칠 수 있는 누군가의 것이 될 수 없었다. 후배분의 49제를 앞둔 주말 같은 학교, 같은 학번 동기분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을 뉴스보다 빠르게 접했다. 마치 심장을 망치로 세게 두드려 맞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같은 도서관에서 임용고시 준비를 했을 이의 자살 소식은 나의 일상에도 타격을 주었다. 때때로 왈칵 눈물이 솟아났고, 웃다가도 입꼬리가 내려갔다.
그 외에도 연이어 벌어지는 교사들의 자살 소식에 나는 15년 전의 내가 떠올랐다. 나는 당시 교대 4학년 재학 중이었는데, 임용고시를 준비하다 숨이 막혀 도망치듯 대만으로 교환학생을 갔다. 그곳에서 고등학교 동창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당시 대만은 우기였고, 말이 잘 통하지도 않는 곳에서 곰팡이처럼 우울이 피어났다. 여러 힘든 상황들이 겹치며 우울은 금방 걷잡을 수 없어졌고, 나는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싶다거나, 달리는 차에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국제 전화가 되는 공중전화기를 붙잡고 나는 한국의 가족과 교수님과 친구들에게 S.O.S를 쳤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죽을 것 같으니 살려달라고.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한국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서부터 부모님 댁으로 내려가는 내내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손을 잡고 조용히 울었다. 그 뒤로 나는 9개월 동안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지냈다. 다시는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할 거라 생각했고, 가끔 거울 속에 비친 열꽃으로 뒤집어진 얼굴과 퉁퉁 불은 몸을 보며 울었다. 스스로 괴물이라 생각했던 나를 보러 멀리서 일부러 찾아와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 이들 때문에 차마 죽을 수는 없었다.
어느 날엔 몇 달 동안 힘든 기색 한 번 보이지 않던 엄마가 다리를 뻗고 대성통곡을 했다. 미안한 마음에 집을 나섰는데 갈 곳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알지도 못했던 싱글맘을 만나 며칠 그 집에 묶게 되었다.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며칠 밥과 잠자리를 내어주었던 그녀는, 어느 날 밤 거실에서 자신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이혼을 하며 상담을 받았다는 얘기와 그때 자신이 받았던 것들을 내게 전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라는 고통의 연결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막혀있던 숨을 내뱉고, 다시 새 숨을 들이쉴 수 있었다.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나는 그 당시 나처럼 고통에 갇혀있는 이들을, 삶의 의미를 송두리째 잃은 이들을, 질식한 듯 가쁜 숨을 내쉬며 살아가는 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내가 지금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내 몸을 내던지지 않은 건, 이렇게 숨을 쉬고 있는 건,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탱해 주었던 이들 덕분이기 때문이다. 의식불명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이후로 내 삶은 덤이니 말이다.
지난주 월요일. 서이초 교사의 49제 날에는 고인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있던 대학원 동기분들을 대상으로 ‘애도를 위한 워크숍’을 진행했다. 고인과 학부 때부터 많은 시간을 보냈다던 후배 한 분은 초반부에 자신의 마음을 나눌 때 ‘혼란’이라는 단어를 쓰셨다가 마지막엔 길게 얘기를 해도 되냐고 하더니 끝내 쌓였던 울음을 길게 터뜨렸다. 깊은 울음 끝에 그가 했던 말은 내내 잊히지가 않는다.
친구의 부고 소식을 듣고서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웃어야 했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 이상했다며, 학교 계단을 오를 때에도, 급식을 먹을 때에도, 친구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한다는 말이었다. 지난날의 나의 경험들과 그의 말에 비춰보았을 때, 가까운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교통사고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해진 충격으로 놀라고 비틀어진 몸이 다시 안정을 찾고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충분한 치료와 휴식이 필요하듯이, 상실의 치유에도 많은 애도의 과정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선후배님들을 만나고 와서 여러 기억들과 마음들이 일어나기도 했고, 이런 연쇄적인 비극이 일어나는 원인을 알고 싶기도 하던 참에 ‘다음 소희’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 속에는 산업 현장에 값싼 노동력으로 투입되는 고등학생 실습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각종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는 고객센터에서 일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제대로 처리하지도 못한 채, 최저 시급도 안 되는 낮은 임금과 부조리한 노동환경에 대항하던 소희는 결국 저수지로 걸어 들어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의 감독은 더 이상 ‘다음 소희’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네이버 영화 포스터 사진 “힘든 일을 하면 존중받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이나 한다고 더 무시해.”
라는 대사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내내 가슴 안에서 반복 재생이 되었다. 그 말에 나는 혹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무시한 적이 없었는지,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하고 대우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런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살피다 보니 무더운 날 수 없는 카트를 밀다가 죽은 사람, 빵을 만들다가 기계에 끼여 죽은 사람, 노동 현장에서 목숨을 끊은 사람 모두가 결국 같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교사 집회의 피켓이나 관련 태그에서 보이는 ‘#나는 곧 당신입니다. #당신이 곧 나입니다.’라는 표현에 온몸으로 공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동료들과 선후배들을 보내고 교육 현장에 남은 선생님들은 깊은 우울과 상실과 슬픔에 빠져있다. 일련의 사건들 이후 교대생의 50% 이상이 새로운 진로를 찾겠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이대로 가면 진짜 ‘다음 교사’가 없는 세상이 올 것만 같다. 그 ‘다음 교사’가 또 다른 희생자를 의미한다면 더 이상의 비극은 없어야만 한다. 하지만 두려움으로 더 이상 교육 현장을 지킬 교사가 없다면 그것은 큰 사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꺼지지 않는 산불처럼 악순환되고 있는 비극은 모두의 안전과 행복에도 곧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 앞에서 개인의 책임을 묻거나, 너만 힘드냐고 서로를 끌어내리거나, 편을 갈라 서로를 비난하거나, 가해자-피해자 구도를 만들거나, 정치색을 입히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가릴 뿐이다. 우리는 결국 모두를 고통에 밀어 넣고야 마는 폭주하는 이 사회의 구조와 시스템을 제대로 보고 바꾸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기에, 우리 모두에게는 마음껏 숨 쉬어야 하는 자유가 있기에, 우리는 결코 홀로 행복해질 수 없기에 담쟁이처럼 연결된 손을 맞잡고 모든 벽들을 넘어가고 싶다. 나와 너를 넘어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 숨 쉬는 생명들을 안는 그 품은 기필코 이 어둠을 넘어서게 할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