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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는 흔하고도 어려운 말

by 달리아

결혼 8주년 아침, 식탁 위에 작은 화분에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무언가 했는데, 일찍 출근한 신랑이 남기고 간 쪽지였다.

고마움을 전하는 마음에 감동을 받아 울먹거리는데, 두 아이들이 나를 보며


"엄마, 왜 울어"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기쁠 때도 눈물이 나는 거야."


라고 설명을 하고서는 계란을 굽고 아침을 차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날 저녁에는 마트에서 아이들 내복도 살 겸, 서울역 3층에 있는 식당에서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음식을 주문해 두고 기다리는데 사람들이 기차를 내리고 타는 2층에서 갑자기 박수 소리가 들렸다. 군복을 입은 한 청년이 무릎을 꿇고 앉아 여자 친구로 보이는 분께 새로운 신발을 신겨주는 모습이었다. 전역 후, 군복무기간 동안 기다려준 연인을 향한 고마움이 온몸으로 느껴졌고, 사람들은 박수로 그들을 함께 축하해 주고, 기뻐해주고 있었다. 우리 가족도 위층에서 박수와 축하를 보냈다. 각자의 방식과 속도대로 서로가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는 모습이, 서울역이라는 배경 속에서 더 드라마틱하게 보였다.

아이가 결혼기념일날 전해준 감사와 축하 편지

곧이어 음식들이 나와 우리 가족도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며, 아이들이 결혼기념일이 어떤 날이냐고 묻자 신랑이 아이들에게 '우리 가족이 만들어진 날'이라는 표현을 했다. 그 말에 신랑을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두 아이들을 낳게 된 지난 시간들이 마치 영화의 필름이 돌아가듯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운 뒤, 신혼 초에 신랑과 함께 샀던 노트에 매일 감사일기가 떠올라 찾아보았다. 자기 전에 하루에 있었던 일 중 감사했던 점을 3가지 정도 찾아서 적고 나누는 것이었다.

나는 대체로 그림도 함께 그렸는데 몇 년 만에 꺼내보니 정말인지 감회가 새롭다. 나는 신혼 초에 매일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건강도 안 좋았고, 우울증세도 있었다. 감사일기 속에는 내가 신랑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운동도 하고 일상의 루틴을 회복했던 과정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그 이후에는 신혼집을 꾸며가는 이야기, 산책 등 소소한 일상에서의 즐거움, 생명이 찾아온 경이로움 등이 담겨있었다. 감사일기장은 거의 1년 동안 이어져 각자의 노트 한 권 가득 감사할 일들이 수천 가지가 쌓여있었다.


그 뒤에 이사도 가고 둘째도 태어나고 각자 대학원도 다니게 되면서 계속 이어 쓰지는 못했지만, 그 1년의 시간 동안 매일 습관처럼 쌓아온 감사의 마음이야말로 우리의 결혼 생활을 지탱해 준 힘이 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돌아보면 지난 8여 년의 결혼 생활 중 고난과 고통의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신랑이 많이 아프기도 했었고, 여러 힘든 상황들이 겹쳐서 엉엉 울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가장 힘들고 아플 때 나를 떠나지 않고 일으켜주었던 신랑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우리 가족을 지탱해 주었다. 상대의 부족한 점이 보이거나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 고마운 것들을 헤아리다 보면 불평과 불만이 저만치 달아나곤 했다.


고마운 마음은 이미 있는 것들 안의 충분함을 보게 했고, 작은 것에도 충만한 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너무나 흔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잘 표현하지 않고 어려운 말이 되어버린 "고맙다"는 말을 남은 생에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신랑과 아이들에게부터 아낌없이 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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