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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생명의 숨결을 나눕니다."

by 달리아

엊그제 이사를 했다. 정리되지 않은 낯선 새 집에서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러다가 오늘 서울예술교육센터에서 문지나 작가님의 '엄마의 즐거운 낙서' 수업에서 참여했다. 작가님의 <여름빛>이라는 책에서처럼 오일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는 수업이었다.


수업을 시작하며 작가님께서 아이를 낳고 5년 정도 그림책 작업 등을 하기 힘드셨을 때 낙서를 하는 게 위안이 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가님께서 그때를 생각하시며 영유아나 초등 자녀를 둔 엄마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여셨다는 말씀에 그림을 그리기 전부터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10명 남짓한 엄마들은 모두 바쁜 시간들을 쪼개어 참여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몇 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감과 연대감이 느껴졌다. 구체적인 사연이나 상황을 듣지 않아도 아이들을 키우며 느끼는 희로애락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수업을 추천해 준 사람도 아이들을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였다. 워킹맘인 자신은 참여하기 힘들지만, 자신의 몫까지 즐겨달라는 그 마음을 너무나 알 것 같아 더 기쁘게 참여했다.

간단한 소개 뒤, 작가님께서는 여러 사진들과 그림들을 보여주시며 주변에 보이는 사물이나 손, 발을 그려보라고 하셨다. 오일파스텔을 처음 써본다는 엄마도 있었고, 흰 종이만 봐도 두렵다는 엄마도 있었고, 입시미술만 해서 낙서가 오히려 어렵다는 엄마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니 모두가 너무나 집중을 해서 시간을 꽉 채워 각기 다른 개성이 있는 작품들을 완성했다.

함께 수업을 들은 엄마들의 작품들

나는 발을 그려도 된다는 말씀을 듣자마자 내 두 발을 하와이에 딛고 있는 것이 상상이 되었다. 얼마 전에 하와이에 사는 친구가 한국에 다녀가서일까. 훌라춤을 좋아해서일까. 하와이는 내가 최근 몇 년간 가장 가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아직 어린아이들을 데려가기엔 비행시간 등이 걸려서 미루고 있지만, 눈을 감으니 마치 VR 기계를 쓴 듯 하와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원색의 꽃들과 무지개를 그리다 보니 마음이 밝아지고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님께서 그림을 그리며 떠오르는 문장도 하나씩 떠올려 보라고 하셨는데,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어'
'I can go anywhere!'


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을 되새기다 보니, 왠지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 내 두 발을 이 땅에 딛고 있다는 것,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자리가 꽃자리라는 것, 원한다면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것, 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 그 모든 것이 감사해졌다.


그림을 그리고서는 집으로 돌아와서 창문에 커튼을 달고, 익숙한 물건들을 제 자리에 두며 새로운 공간에 첫인사를 나눈다.


찾아보니 하와이 인사말인


"알로하"


의 뜻이


'존재와 생명의 숨결을 나눈다.'


라고 한다.


"알로하"


새 공간에 깃든 모든 존재들과 생명들의 숨결을 느끼며, 인사를 건넨다. 이곳에 머물렀던 이들에게도 인사를 건넨다. 함께 노래를 하듯 연주를 하듯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미소를 띤다.


"알로하, 알로하"


창문 밖은 어둡고,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지만, 그림을 보며 인사를 나누다 보니, 내 영혼은 이미 따스한 하와이로 날아가 춤을 추는 것만 같다.


"알로하, 알로하"


이 글을 읽는 모두의 밤도 따스하고, 평안하기를.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우리가 걷는 걸음마다 사랑의 꽃들이 가득 피기를 기도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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