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아 Nov 04. 2023

"힘들었겠다."

어제 허벌리스트 수업 후, 아이들 어린이집에 하원을 시키러 갔다. 수업 장소가 꽤 먼 거리인 데다가 도로가 막혀서 어린이집에 평소보다 늦게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둘째 어린이집에 갔는데, 둘째가 나를 보더니


"엄마, 오늘 왜 늦게 왔어?"


라고 묻는다.


"오늘 차가 많이 막히더라고."
"버스 타고 왔어?"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작은 버스도 갈아타고 왔지."


라고 하니, 둘째는 잡고 있던 자그마한 손에 힘을 주며 내게


"엄마, 힘들었겠다."


라고 말한다.


"오, 엄마가 힘들었는지 어떻게 알았어?"


하니


"나도 그렇게 해봤잖아. 할머니집 갈 때, 기차 타고, 또 차 타고. 할 때 나도 힘들었거든!"


이라고 말한다.

늘 따뜻하고 예쁜 사랑을 전해주는 아이

내게 힘들었겠다고 공감해 주는 아이의 짧은 한 마디에, 몸과 마음에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짐들과 아침부터 분주하게 처리했던 일들이 있었음에도 힘든지도 모르고, 고단한지도 모르고 지냈던 내게 실로 그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누군가 나의 애씀을, 나의 수고와 최선을 알아주는 것만 해도 정말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기도 했다. 반대로 가까운 사람들이 그것을 몰라줬을 때 느끼는 서운함과 좌절감은 뜨거운 분노나 차가운 냉대로 표현되는 것 같다. 강의를 통해 만난 분들도 대부분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몰라줘서 상처받거나 마음이 얼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나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는 4살 아이를 보며, 40살에 가까운 나는 얼마나 그러고 사는지도 돌아보게 된다. 아이들은 사랑을 표현하고 나누는 방식이 자연스럽다. 누나는 동생이 추울까봐 겉옷의 단추를 잠궈주고, 누나가 울고 있으면 동생이 휴지를 가져다 닦아준다.

날이 춥다며 둘째 단추를 잠궈주는 첫째

그런 아이들처럼 순수하게 누군가를 위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부터 나를 공감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었을 땐 스스로 힘들었구나 하고 위로하고, 너무 애쓰고 있을 땐 잠시 멈춰 충분히 쉬게 하면서 나 자신을 잘 돌보고 싶다.


나는 언제든 나를 돌보고, 위로할 수 있음을, 그런 자기 돌봄의 힘이 쌓일 때 다른 이들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음을, 결국 내가 편안하고 행복해야 주변에 그런 마음을 전할 수 있음을 나날이 더 깊이 느낀다.


철이 든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건 나와 주변을 더 이해하고 공감하고 사랑하는 힘과 품이 커지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나의 아이들이 온몸으로 전해주는 사랑을 잘 담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들이다.

작가의 이전글 게으를 수 있는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