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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아 Nov 01. 2023

게으를 수 있는 힘

최근 주변 사람들에게 부지런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글 쓰고, 강의하고, 허벌리스트 과정을 듣고, 요리를 하는 일상이 그리 보였나 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부지런하다는 표현이 내게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나는 스스로 게으른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일상에서의 나는 누워있기를 좋아하고, 웹툰 등을 기웃거리며 빈둥거릴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로 그런 시간을 좋아하기고 기다리기도 한다.

@픽사베이

더 놀라웠던 것은 어제 친한 언니와 얘기를 나누다가, 언니가 자신을 게으르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엔, 언니는 누구보다 직장 생활도 열심히 하고, 카톡 프로필이나 SNS에 매번 새롭게 읽은 책들도 올리는 세상 부지런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언니에게


"언니, 나도 최근까지 내가 게으르다 생각했어"


라고 얘기하고선 나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우리가 왜 스스로를 게으르게 생각하게 됐는지 들여다보다가 예전에 읽었던 책이 떠올랐다.

성취는 덧없는 것이다. 진정한 만족을 줄 수 없다. 결승선을 지나 트로피를 받자마자 경주의 기쁨은 끝난다. 게으름이라는 거짓의 가르침을 이겨내는 것만큼 훌륭한 승리는 없다.

사실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우리가 결코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즉, 아무리 승리를 많이 하더라도 새로운 기회를 계속해서 좇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런 식으로 성취에 집착하게 되면 실제로 삶에서 보람과 즐거움이 줄어든다.

- 데번 프라이스, <게으르다는 착각>


게으름은 사람들을 착취하기 위해 심어둔 거짓말이자 착각이라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갔다.


다시 한번, 밑줄 그어두었던 책의 구절들을 찾아보면서, 나의 삶을 돌아보니,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점점 삶의 쉬는 시간과 빈 틈이 줄어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모든 친구가 경쟁자이기도 한 세상 속에서 남들보다 잘하기 위해서는 더 빨리 목표를 향해 달려야 했다. 하지만 '더 높이, 더 빠르게'를 구호로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는 점점 더 가속화되어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원하는 곳에 닿지 못하는 공허함에 시달렸다. 결국 깊은 우울증이라는 폭탄이 터지고 나서야 나는 내가 뛰고 있는 레일이 내가 진정 원하던 방향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달리기를 멈추는 순간, 도착했다.'


라는 말이 주는 지혜를 느끼며, 허상의 행복을 좇는 것을 멈출 수 있는 힘을 길러가게 되었다. 마치 전속력을 향해 질주하는 차가 방향을 바꾸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듯, 나는 그동안 쓰지 않았던 힘을 써서 속도를 줄이고 멈추는 연습을 하고 있다.


사실 신기루와 같은 허상의 목표가 사라진다면, 어떤 성취나 성과로 인한 인정과 관심을 나 자신이라고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달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마침 오늘 첫째가 블록을 높이 쌓아아 퇴근하는 신랑에게 자랑하자, 신랑이


언젠가 무너질 거니, 너무 실망하지는 마.


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그 말에 아이가 미련 없이 공들여 쌓은 탑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고, 한편 후련한 마음이 든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인 듯하다.

아이가 높이 쌓은 블록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충분히 게으르게 살아갈 수 있을까?


위에 인용한 <게으르다는 착각>이라는 책의 '나가는 글'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게으름이라는 거짓에 저항하는 법을 배우려면 끊임없이 지속되는 내적 작업이 많이 필요하다.

 자기 연민과 친절을 계속해서 실천하고, 변화가 바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결코 완벽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지금 그대로의 당신으로도 괜찮다.
다른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다.


라고 말한다.


위의 글처럼 나는, 그리고 당신은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고, 지금 이대로도 괜찮으니, 나는 마음껏 게으르게 지내는 힘을 나날이 더 길러가고 싶다.

@픽사베이

글을 쓰다 보니 예전에 누군가 열심(熱心)이라는 말 자체가 심장에 열을 내는 거니, 마치 엔진이나 컴퓨터가 가열되지 않게 꺼두듯이 마음도 충분히 쉬어주며 열을 식혀야 한다는 말도 떠오른다. 더 빠른 속도와 더 높은 목표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게으르다는 건 나만의 속도와 목표를 가지고 살겠다는 힘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나는 이 삶을 이겨야 하는 전투처럼 살아가지 않고, 춤을 추듯 즐기며 살아가기로 했다.


매 순간 그렇지 못해도, 서툴러도, 그래도 괜찮다. 나는 내가 멈춰 선 발아래에서 꽃들을 찾아낼 것이고, 그 향기를 맡는 게으름을 흠뻑 즐길 것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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