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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아 Jun 27. 2024

아픈 이를 위한 도시락 배달

친한 언니가 뒤늦게 코로나에 걸렸다고 했다. 기운이 없고 소화도 안 되어 죽을 사 먹었는데도 탈이 났단다. 혼자 아플 때 잘 챙겨 먹지 못하면 몸마음이 상하기에, 며칠 마음이 쓰였다. 마침 집에 야채수프 재료들이 있어 재료들을 잘게 다져서 오랜 시간 뭉근하게 끓였다. 엊그제 끓여 냉장고에 둔 콩수프와 오늘 아침 끓인 감잣국도 담았다. 집에 두고 먹는 비상용 쌍화차와 사과즙, 바나나와 통밀빵도 챙겼다.

도시락을 챙겨 들고 아이들 하원 전에 언니 집 앞에서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왠지 자고 있을 것만 같아서 문 앞에 두고 메시지를 보냈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도 쉬어있었는데, 고맙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다. 전화를 끊고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힘들 때 전해졌던 사랑과 온기가 떠올랐다.


2년 전 연말에 온 가족이 코로나에 돌아가며 걸려 2주가 넘도록 집에서 격리했을 때, 택배로 먹거리를 보내주었던 친구, 집 앞에 과일을 두고 가신 어린이집 선생님,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주었던 지인이 있었다. 몸마음이 너무나 힘들고 아팠던 순간들마다 나를 잡아주었던 손이 있었다.


내가 아픈 사람들을 그냥 잘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오랫동안 아팠기 때문이다. 그것이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운지 알기에, 아픔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픈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살아오며 내게 전해진 사랑과 온기를 전하며 갚는 일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내 삶은 여러 번 무너지고, 다시 세워져 왔다. 껍질을 벗겨지고 잘게 다져지고 오래 끓여내어 부서진 재료들이 하나의 또 다른 요리가 되는 과정은 내 삶의 여정과도 어딘가 닮아있다.


아이들을 재운 뒤, 고요한 밤, 힘든 시절 읽고 펑펑 울었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당신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다시 일어서길 기다릴 뿐이다

물과 바람과 맑은 햇살과 새소리가
섞인 진흙이 되어
허물어진 당신의 집을 다시 짓는
단단한 흙벽돌이 되길 바랄 뿐이다

- '지푸라기', 정호승


시를 다시 찾아 읽으며 아픔과 고통과 절망 속에서 무너진 사람들에게 지푸라기라도 건네고픈 마음이 든다. 따스함과 정성이 담긴 요리가 누군가의 삶을 다시 일으킬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무너지고 휩쓸릴 때 잡은 지푸라기들로 내가 더 단단해졌듯이, 우리가 서로에게 지푸라기가 되어 벽돌을 쌓고 집을 지어갈 수 있길 기도하며 깊어져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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