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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아 Jul 17. 2024

비 오는 날의 야채수프

장마철이 되면 긴장이 된다. 덥고 습하고 어두운 장마철에는 몸도 마음도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몇 번의 우울을 늪을 지나온 뒤에는 그를 미리 대비하는 힘과 지혜가 생겼기에, 장마철에는 스스로를 더 잘 돌보려 한다. 그를 위해 잘 먹고, 잘 쉬는 게 최선인데, 다른 일들보다 나 자신을 챙기는 것을 우선하려 한다. (예전에는 나의 컨디션을 살피고 돌보는 것이 어색하고 어려웠다)


오늘은 아침에 아이들 어린이집 등원길에 집중호우가 쏟아져 우산이 무색하게 비 맞은 생쥐처럼 출근을 했다. 젖은 옷을 입고 에어컨 바람을 쐬니 몸이 굳으며 감기몸살기운이 올라왔다. 해야 할 업무들을 부지런히 마치고선 조퇴를 쓰고 집에 돌아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발끝까지 이불을 덮고 몸을 데웠다. 그렇게 한숨 자고 나니 저녁을 할 시간이라 야채수프를 끓이기로 했다. 소화가 잘 안 되고 몸이 차가워지는 야채수프가 딱이다!

마침 제철이라 잔뜩 사둔 토마토가 많이 보이길래 마녀수프로도 유명한 토마토야채수프를 끓여보았다. 스텐냄비에 코코넛오일을 조금 넣고 양파를 먼저 볶다가, 양파에 갈색빛이 돌면 감자, 양배추를 넣고 살짝 볶은 뒤 물을 넣고, 토마토, 불린 병아리콩을 넣어 팔팔 끓인 뒤 토마토소스 몇 스푼과 소금을 넣고,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강황가루, 생강청, 다진 마늘을 넣고 불을 낮춰 뭉근하게 끓여낸다.


오래 끓여 뜨거운 김이 펄펄 나는 수프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니, 등줄기와 목에서부터 땀줄기를 따라 냉기가 빠져나가는 것만 같다.

지난번 비가 내렸을 때는 병아리콩과 렌틸콩이 들어간 콩수프, 셀러리가 들어간 야채수프가 나의 몸과 일상을 지켜주었다. 자기 돌봄은 이처럼 나 자신을 위한 배려와 행동에서 시작된다. 내 몸과 마음이 따스하게 채워질 때면 주변에도 친절한 온기를 나눌 힘이 생긴다.


한 그릇의 따스한 야채수프에서 얻은 온기로 나와 내 주변을 더 잘 돌보고 품으며 지내고 싶은 장마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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