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치유의 관점에서 본 '케이팝데몬헌터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게 하는 '마음의 연금술'

by 달리아

나는 오랜 시간 마음의 감옥에 갇혀 살았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비난하고 자책하던 습관은 결국 스스로를 구덩이에 몰아넣고야 말았다. ‘극심한 우울증’이라는 진단은 마치 ‘내 인생은 끝났다’라는 선고처럼 느껴졌다. 그 후 몇 달 간 끝이 없는 막막한 어둠이 이어졌다. 살지도 죽지도 못한 체 산 송장처럼 지냈다. 먹고, 자는 것 외에 다른 일상은 하기 어려웠다. 눈을 뜨고 있을 땐, 내가 잘못했던 일들만 기억이 났다. 세상의 모든 일이 내 탓인 것만 같은 죄책감은 점점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내 존재 자체가 부끄러웠고, 괴물이나 벌레처럼 느껴져 어딘가에 숨고만 싶었다. 그런 나와는 반대로 세상에는 행복이 넘쳐났다. SNS에서는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잘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나를 비추는 조명만 불이 꺼진 것만 같았다. 나의 몸과 마음은 구겨져 버려진 종이처럼 작게, 더 작게 움츠러들었다.

desperate-2293377_1280.jpg ▲ 우울증 © 픽사베이

고통과 절망에 빠져 있는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음의 감옥에 난 문에는 손잡이가 안으로 나 있어 아무리 밖에서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았다. 굳게 닫힌 문 사이로 틈이 생긴 것은 나처럼 우울하고, 아픈 사람들과 연결되면서였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자각과 고통의 연대 속에서, 나는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고 길을 나섰다. 그 뒤로 많은 치유와 성장의 여정을 걸어왔다.


내 삶을 마비시켰던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수많은 심리치유 워크숍 등을 찾아다녔고, 대학원에서 심리상담을 전공했다. 그 여정에서 참여했던 한 집단상담에서는 처음 자신을 소개할 때,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한 문장에 넣어 말해 보라고 했다. 약점이라 생각하는 부분을 먼저 말하고, 강점을 뒤에 붙여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이렇게 말했다.

"나는 종종 우울하지만, 따뜻함을 나누는 사람이에요"


간단하지만, 강렬한 여운이 남는 활동을 통해, 나는 비로소 나 자신 안에 모순되고 상반되는 마음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 다면적인 인간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며 배움과 성장의 여정을 이어왔다. 특히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C.G. Jung)이 우리의 무의식 속의 억눌린 두려움과 상처가 그림자(shadow)로 존재한다고 했던 것에 공감하며, 내면 아이와 트라우마 치유 작업을 통해 나의 그림자를 직면하고 받아들이고자 노력해왔다.

▲ 케이팝데몬헌터스 © 넷플릭스

그래서인지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두 아이들과 보게 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빛과 어둠’, ‘헌터스와 데몬’ 등 ‘선과 악’의 대립 구도가 ‘흑백’처럼 선명한 스토리는 여러 개성 있는 캐릭터들과 좋은 노래들 덕분에 더욱 흥미진진했다.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주인공인 루미(Rumi)의 변화 과정이었다. 루미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K-pop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의 리더이다. 하지만 그런 루미에게도 말 못할 비밀이 있다. 데몬을 물리치는 헌터의 사명을 타고났지만 데몬이 가지고 있는 문양을 지나고 태어난 것이다. 루미는 그를 평생 숨기고 감춘 체 살아오며 때때로 자신이 태어난 것 자체를 ‘실수’라 여기기까지 한다.


루미 뿐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인간이 지닌 모순적이고 다면적인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헌트릭스 멤버인 미라(Mira)는 뛰어난 춤실력과 카리스마로, 조이(Zoey)도 랩실력과 작사작곡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멤버이다. 하지만 미라는 가족들 사이에서 괴짜로 여겨지며 제대로 수용 받지 못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고, 조이는 여러 아이디어 등이 넘치는 스스로를 과하다고 여기며 스스로를 판단하고 검열한다. 사자보이즈(Saja Boys)의 리더인 진우(Jinu)는 과거에 가난했던 어머니와 여동생을 버리고 혼자 잘 살고자 했다는 죄책감에 고통받는 존재이다.


너무나 멋지고 화려한 아이돌이 보여주는 모습은 융이 사회적 가면이라 칭했던 페르소나(persona)라고 할 수 있다. 완벽해보이는 인물들의 페르소나 뒤에 있는 연약한 모습에서는 오히려 인간미마저 느껴져서 그들의 혼란과 좌절에 더 깊이 공감이 되고 이입이 된다. 수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는 멤버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상처는 우리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미처 살펴주지 못한 상처와 아픈 기억, 후회되는 마음 등은 사람들 안의 빛을 빼앗는 데몬의 목소리가 되어 영혼을 부서뜨린다. ‘너는 충분하지 않아.’, ‘다 네 잘못이야.’, ‘넌 너무 과해.’, ‘넌 태어난 것 자체가 실수야.’ 등 자신을 비하하고, 탓하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혐오감을 심어준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빛과 목소리와 영혼을 빼앗긴다. 스스로 가치와 쓸모가 없다고 느껴지기에 불나방처럼 맹목적으로 외부의 빛을 따라가다 자신이 다 타버리는 줄도 모른다. 거대한 불꽃의 형상을 하고 있는 데몬의 우두머리는 사람들 안의 영혼의 빛을 빨아들이며 더욱 커져 간다. 그리고 사자보이즈의 리더인 진우의 죄책감을 이용해 더 많은 빛들을 빼앗고자 한다.


노래를 통해 사람들 안의 고유한 빛을 일깨워주는 루미는 데몬들의 계략으로 무대 위에서 옷이 찢겨 데몬의 문양이 드러나고야 만다. 가장 가까운 멤버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루미는 일순간 무너진다. 리더였던 루미가 중심을 잃자 멤버였던 미라와 조이도 빛을 잃고 최면에 걸린 듯 데몬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루미는 자신 안의 ‘선과 악’, ‘빛과 그림자’, ‘헌트릭스와 데몬’을 온전히 마주하며 거듭 난다. 그리고 더 강해진 새로운 눈빛과 힘으로 데몬들과 맞선다.


Gonna be, gonna be golden
(우리는 황금처럼 빛날 거야)
Oh, I’m done hidin’, now I’m shining like I'm born to be
(오, 더 이상은 숨지 않을 거야, 나는 내가 타고난 것처럼 지금 빛나고 있어)


라는 골든(Golden)의 가사에서처럼 루미는 자신의 무의식에 억눌린 그림자를 인정하고, 드러내고, 받아들이고 통합해가며 융이 말한 ‘자기실현’과 ‘마음의 연금술’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자기실현’이란 본래의 자신을 회복하는 것이며, ‘마음의 연금술’은 마치 납을 금으로 만드는 고대의 ‘연금술’처럼 연약했던 존재가 황금처럼 빛나고 강하게 변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라는 책의 저자이자 교사들의 교사라 불리는 파커 J. 파머는 우울증을 겪고 난 후,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책을 통해


"이제 나는 나 자신이 약함과 강함, 약점과 재능, 어둠과 빛을
동시에 지닌 사람이라는 걸 안다.
이제 나는 완전해진다는 것이 그 중 어느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포용하는 것임을 안다"


라는 글을 썼다. 진정한 변형과 성장은 우리가 모른 척하고, 숨기고, 도려내고 싶은 약함과 어둠을 나의 일부로 온전히 포용할 때 일어난다는 것이다. 루미처럼 마음의 연금술을 통해 거듭나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내 마음을 가두는 '데몬의 목소리'를 만들어 낸 상처와 두려움을 끌어안으며 수용하는 것. 그러함으로 더 크고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 그로 인해 비로소 완벽에서 벗어나 온전해진 존재의 목소리는 듣는 이들의 마음의 빛을 되찾아주고, 자유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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