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카라과 '백마 탄 여인' 감동실화...한국인이었다

다큐 영화 <나무의 노래>, 조선황실 후손의 믿기지 않는 이야기

by 달리아

믿기지 않는 영화를 봤다. ‘니카라과’라는 나라에 사는 백마 탄 공주의 이야기였다. 나라의 이름도, 주인공도, 내용도 동화나 판타지 영화에 어울릴 법한데, 놀랍게도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백마를 타고 우거진 밀림 숲을 둘러보는 백발의 할머니의 모습이 나온다. 새의 속 깃털같은 보드랍고 새하얀 머리카락에, 흰색 옷을 즐겨 입고 있는 모습 때문인지, ‘할머니’라는 단어에 다 담을 수 없는 신비롭고도 맑고, 우아한 느낌을 풍기는 분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주님이라고 하나보다 생각했는데, 실제로 조선 왕조의 후손이셨다는 걸 영화 중반부에서야 알게 되었다.

KakaoTalk_20260124_170156330_03.jpg 사진 : 미디어나무 제공


그녀는 숲속을 거니는 내내 “아름답다!”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고, 커다란 나무 앞에 서서 끊임없이 경이로움 표현하는 분이었다. ‘삶에서 받은 것들이 너무 많아, 죽기 전에 돌려주고 가고 싶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며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기로 서원을 세웠다는 것, 이미 70, 8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는 것, 그 면적이 여의도의 7배가 된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입이 쩍쩍 벌어졌다. 황무지에서 몇십 년간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든 장 지오노 작가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책의 실사판이 아닐 수 없었다.


수십 년 전 44달러를 들고 미국 뉴욕으로 건너와 공부를 하고, 과학자로 살아가며 세포를 연구하며 우주를 만났다는 그녀가 맨해튼의 할렘가 건물을 사게 된 것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스토리었다. 그 후 부동산으로 번 돈으로 니카라과에 맨해튼 크기의 땅을 사서 나무를 심어왔다니,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돈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한 번도 그 돈을 내 돈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삶의 의미와 소명을 향한 단단한 중심과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처럼 생각하고, 목표한 것을 현실로 이루는 삶을 살아낼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KakaoTalk_20260124_170156330_01.jpg 사진 : 미디어나무 제공

그 해답은 영화 전반에 배경처럼 깔린 그녀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두려움이 있을 때는 황홀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 지난 과거를 후회하게 되면 생명이 멈추고, 썩기 시작한다. 우리가 자신을 보지 못하면 유명해지려는 공명심을 목적으로 살게 된다. 그렇기에 자기를 상실하게 되고 관념의 틀 때문에 보고, 느낄 수 없게 되고, 자연에서 멀어지게 된다.” 등의 문장 등은 삶의 깊은 경험에서 길어진 지혜의 정수처럼 느껴졌다.


교육자이자 엄마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비교와 경쟁을 기반으로 한 현실의 교육이 진정한 자신을 만나고 자연과 연결하는 것과 반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씁쓸하고도 슬픈 생각이 들기도 한 부분이기도 했다. 동시에 진정한 교육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나 암기로 이루어질 수 없고, 행동과 삶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신했다.


영화 속에 바위 위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나무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자신의 위치에서 이 지구별에 온 소명을 아름답고도 강인하게 펼쳐가는 모습에서 성인인 나도 다시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미 자연과 하나 되어, 그 큰 순환과 흐름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언어와 행동에는 깊은 힘과 울림이 느껴졌다.


그 묵직하고도 뭉클한 감동에 영화가 끝나고도 사람들이 쉬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주인공 다음으로 영화에 출현한 나무, 동물 등이 나오는 것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만든 감독이 어떤 마음으로 촬영했는지 단박에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영화가 끝나고서는 이지혜 영화저널리스트의 진행으로 진재운 감독, 현경 교수님, 김이나 작사가, 달시 파켓 번역가의 대담과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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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 교수님의 <연약함의 힘>이라는 책에서 소개되었던 공주님의 이야기가 몇 년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진 이야기, 김이나 작가가 흔쾌히 내레이션을 수락했다는 이야기, 전갈에 쏘이는 등 여러 고생을 하며 만들었다는 이야기 등 영화의 뒷이야기를 듣는 것에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즉석에서 QR 코드로 만들어진 오픈채팅방에서는 가슴 뜨거운 감상평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최근 흑백요리사에 출현하셔서 화제가 되었던 선재 스님도 감상을 나눠주셨고 영화 수라에 출현했던 정희정님은 수라의 대사에서도 나왔던 “아름다움을 본 죄”라는 표현을 언급하시며, 이런 영화들이 100개의 극장 등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공감이 되었다.


늦은 겨울밤임에도 400석이 넘는 자리를 꽉 채웠던 대부분의 관객들이 남아, 마치 나무들이 산소를 내뿜듯, 각자의 가슴에서 솟아 나온 감동의 여운을 나누다 보니 여름 장마철 같은 후끈한 열기가 영화관을 가득 메우는 느낌이었다. 쉬이 자리를 뜨지 못하는 사람들로 밤 10시가 가까워져서야 행사가 겨우 마무리되었다. 시사회에 초대해주었던 지인과 좋은 영화를 만들어주신 감독님께 인사를 드리고 영화관을 나서는데, 하얀 가루 같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와, 눈이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운 앞에서 감탄하시던 공주님의 태도에 물들어서일까. 나도 마치 아이처럼 기쁘게 눈을 맞이하며 가슴을 열고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벌렸다. 금세 눈이 쌓이며 하얗게 뒤덮인 거리에 발걸음을 내딛다 보니, 영화에서 인생을 사는 자세에 대한 대사가 내 안에서 울려 퍼졌다.


“첫눈이 내린 거리에 처음 발을 내딛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낸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길을 걸어갈 때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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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때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디며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서울을 횡단하여 집에 도착해서는 문득, 대학생 때 읽고선 좋아서 따로 적어두었던 나무에 대한 글이 떠올라 찾아보았다.


우리들이 서글퍼져 더이상 삶을 버텨내기 힘들어질 때, 나무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조용히 하라! 조용히 하라! 나를 바라보라!


나무들은 긴 생각을 지나고 있다.

우리들보다 더 오래 살며, 호흡은 길고 고요하다.

우리가 나무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 그들은 우리보다 현명하다.


나무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면서 생각이 짧고 어린애같이 서두르는 우리들은 말할 수 없는 즐거움에 젖는다.


나무들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 이상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되려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나무는 말을 하고, 그녀는 듣는다’ 라는 영화 포스터의 말처럼 그녀는 이미 <나무의 노래>를 듣고, 자신만의 고향과 행복을 찾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통해 <나무의 노래>를 더 많은 사람들이 듣길 바란다. 그 노래를 듣는 이들은 깨어나게 될 것이고, 깨어난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나무가 될 것이고, 그 나무들은 연결되어 숲을 이룰 것이며, 그 숲은 기어코 이 땅의 무수한 상처를 무한한 사랑으로 되돌려 놓을 것이니 말이다.


<나무의 노래> 예고편

영화상영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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