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라는 말을 들을 아이가 한 말

by 달리아

매서운 추위에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겨울밤이었다. 아이가 거실에 있던 그림책 한 권을 가져와 온수 매트가 깔린 침대 위에서 읽기 시작했다. 조용히 책장을 넘기던 아이가 책을 다 읽자마자 내게 책을 건네며,

“엄마, 이 책은 재미있는데, 감동적이야. 중간에 좀 힘든 부분도 있거든. 근데 마지막엔 눈물이 좀 나와. 엄마 책처럼 인생에 필요한 책이야.”

라고 말했다. 나는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이불을 목 끝까지 올리고선 작고 보드라운 손으로 내민 책을 받아 들었다.

KakaoTalk_20260123_094530748_06.jpg 그림책 <괜찮아, 괜찮아>



책은 날마다 함께 산책을 하는 할아버지와 아이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거르며 ‘세상이 마법처럼 점점 넓어졌어요.’라고 말하던 아이는 곧이어 ‘새로운 발견과 즐거운 만남이 늘어날수록 난처하거나 두려운 일도 많아졌어요.’라고 고백한다. 나를 때리고 괴롭히는 친구와 이빠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는 개, 쌩하고 달리는 자동차, 무서운 병균 등에 아이는 잔뜩 움추러든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마법 주문을 외우듯 속삭이신다. “괜찮아, 괜찮아”


KakaoTalk_20260123_094530748_03.jpg 그림책 <괜찮아, 괜찮아>

그것은 ‘모두와 잘 지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고 아프거나 다쳐도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는 뜻이었고, 세상은 꽤 괜찮은 곳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게 아이는 성장을 했고, 지난 나를 회상하며 나이가 드신 할아버지에게로 향한다. 자신이 들었던 말과 받았던 사랑을 전해드리기 위해서.



“괜찮아, 괜찮아.”

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는 책을 읽고 나니, 왠지 몸과 마음의 온도가 올라가 시렸던 손과 발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아이도 그런 느낌을 받았던 걸까. 나는 내 곁을 지키던 아이에게

“괜찮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어?”

라고 물어봤다. 아이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지지”

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돌아보니 나 역시 그랬다.

방황했던 20대 시절. 외롭고, 허전하고, 혼란스럽고, 아픈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할 줄 몰라 홀로 끙끙 앓고 있었던 때에 읽었던 시詩에도 괜찮다는 말이 노래의 후렴구처럼 반복되고 ᅟ깄었던. 거센 눈발이 날리는 겨울 산속에 사는 어린 생명들도 보듬어 안아줄 것만 같은,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괜찮다'라는 말이 '새파라니 얼었던' 내 마음도 따스하게 안아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 속에서는

까투리 메추라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

...

울고

웃고

수그리고

새파라니 얼어서

운명(運命)들이 모두 다 안기어 드는 소리, ……


- 서정주,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中

몇 년 전 읽었던 한강의 ‘괜찮아’라는 시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시에서 밤마다 몇 시간씩 울음을 그치지 않는 어린 아기를 안고서 '왜 그래, 왜 그래' 하며 울던 엄마는 어느 날 아이에게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며칠 뒤 울음을 그친 아이를 보고선 시인은 말한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 한강, ‘괜찮아’ 中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실수를 하거나 잘못했을 때,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 ‘도대체, 왜 그래? 왜 그랬어?’라고 다그쳐 묻던 것은 내가 자라오며 들었던 말이었고, 습관이 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는 안 그래도 쪼그라든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하고, 닫히게 했던 것임을 나 또한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뒤늦게 알게 되었다. 사실 그런 깨달음 후에도 ‘괜찮다.’고 말을 건네는 것에는 꽤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몸과 입에 배어버린 익숙한 습관을 바꾸는 데에는 그만큼의 용기와 여유와 힘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친절한 말을 건네는 것이 그렇게 어색하고 쑥스러울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나에게 너그러워질수록, 남에게도 다정할 수 있다는 것을 갈수록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마흔이 넘은 뒤로는 예전처럼 거창한 새해 목표를 잡지 않는다. 그저 나와 남에게 좀 더 친절하고, 다정한 매일을 위해 기도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 한 해는 “괜찮다. 괜찮다.”라는 말을 좀 더 자주 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싶다. 어쩌면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가장 필요한 그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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