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모든 걸 망쳤다고 자책하며 이제 다 끝이라 여겼다. 다시는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할 수도 없을 거라 여기며 스스로를 가두었었다. 절망의 감옥에서 나를 구출해 주었던 것은 이미 절망을 건너 본 이들이 내미는 손길이었다. 나는 그 손을 꼭 붙들고 그전과는 다른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경쟁에서 지면 끝이라고, 실수하거나 실패하면 낙오된다고 여기며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내 숨을 조여왔다는 것을. 말 잘 듣는 모범생으로 살아오며 베여있던 습관이 오히려 나를 가두는 올가미가 되었다는 것을.
그것을 자각한 뒤로는 이전과는 달리 삶을 좀 더 가볍게, 즐겁게 살기로 했다. 노래의 제목처럼 ‘삶은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일들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즐기기로 했다. 그 후 많은 것이, 아니 모든 것이 변했다. 꽉 조이는 옷을 벗어던진 듯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고 자연스럽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으며,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닌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에 더 집중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예술에 보다 관심이 가게 되었고, 매일의 일상을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어졌다. ‘일상예술가’라는 단어도 그래서 쓰게 된 표현이었다.
평소 요리를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잘 차려 먹는 편이라 음식을 담는 그릇에도 관심이 갔다.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요리의 느낌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평소 눈여겨보던 도예공방을 찾았다. 이천 예술인마을에 있는 한 공방에서 물레를 돌려 그릇을 만드는 곳이 있었다. 서울보다 저렴한 가격에 시설도 넓고 좋았고, 마음껏 흙을 만질 수 있다는 후기에 마음이 꽂혔다. 사는 곳에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예술인 마을에 들어서니, 샛노란 벽이 인상적인 건물이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층고가 높은 공간에 무지갯빛 도자기에 나무를 결합한 작품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도예체험을 알려주실 작가님의 작품이었다. 안쪽으로 난 방에는 여러 대의 물레와 흙과 작업대가 놓여있었다. 작가님은 나와 가족들이 작업실로 들어가자마자
“오늘 작품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흙놀이를 하러 왔다고 생각하고
마음껏 즐기다 가세요.”
라고 첫마디를 던지셨다. 나는 속으로
“와우!
를 외쳤다. 지금처럼 이렇게 긴 글을 쓰고 싶을 만큼 마음에 쏙 드는 문장이었다. 나는 자리를 잡고 안고서 하얀빛이 도는 흙을 만지기 시작했다. 함께 물레 앞에 앉은 두 아이들처럼,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서, 어릴 때 흙장난을 하던 때로 돌아간 것처럼. 따스한 물을 부으니 한결 더 부드럽고 매끈해지는 흙을 만지니 절로 기쁨이 솟아났고,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앉은 신랑도 신나서 콧구멍 평수가 넓어진 모습을 보고 덩달아 웃음이 났다. 흙을 만질 때에는 다른 놀이와는 달리 어떤 원초적인 즐거움이 있었다. 중년의 위기를 겪으며 심한 우울증과 탈진 상태에서 고요한 숲 속에서 모래를 만지며 모래치료를 만든 정신분석학자인 융도 그를 알았던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신랑은 ‘물레가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보다 보면 마치 무한대의 중심으로 빨려나가는 느낌이 든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더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다며. 정말 눈 깜짝했는데 1시간이 넘게 지나가 있어 작가님께 놀라움을 표했더니 작가님은
“도자기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흙놀이, 물놀이, 불놀이를 다 할 수 있어서 시간이 진짜 빨리 가요. 저는 컵 몇 개 만들다 보니 40년이 흘러 있었어요.”
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 또한 곱씹을수록 공감이 되고, 재미있는 문장이라 몇 번 되뇌며 잘 기억해 두었다. ‘컵 몇 개에 40년이라니!’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과 마음을 두며 살아온 고수가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표현이었다. 그런 작가님의 내공은 찌그러진 도자기 앞에서 더욱 드러났다. 물레의 속도 조절을 잘못하거나 손가락의 힘조절에 실패했을 때 어김없이 어그러지는 도자기 앞에서 그는 무척 의연했다.
‘이건 진짜 회생불가다.’라고 여길 만큼 난감한 상황 속에서도 정말 대수롭지 않게, 윗부분을 실로 잘라내거나 두 손바닥에 힘을 주어 흙을 다시 뭉쳐 주시며
“다시 해 보세요.”
라고 옅은 미소를 띠기까지 했다. 이건 그냥 놀이니까 언제든, 얼마든 다시 해보라는 것이었다. 그 말과 태도에 나는 왠지 힘이 나고,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시험 한 번에, 문제 하나에,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성과와 인정과 관계에 인생이 걸린 것처럼 벌벌 떨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라서일까. 나는 몇 번이나 흙을 무너뜨렸다가 다시 세웠다가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무너지고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살아왔던 나의 지난날들을 두 손으로 보듬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물레 위에는 딱 내가 원했던 사이즈와 모양의 그릇 하나가 만들어져 있었고, 토치불로 그릇을 살짝 말린 후 채색을 하면서는 <아티스트 웨이>에서 작가가 말했듯 나선형으로 성장해오고 있는 여정을 담아 붓질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만든 그릇이 유약을 바른 뒤 뜨거운 불을 견디고, 반짝이고, 단단해진 모습으로 나올 것을 상상만 해도 뭉클했다. 나 역시 고통을 인내하고 성장해 오며, 비로소 더 많은 아픈 가슴을 이해하고 담아낼 수 있는 마음 그릇을 키워왔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삶에서 아픔과 고통은 피할 수 없어도 그를 넘어설 때마다 더 큰 그릇이 되어 있을 거라던 어른들의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마침 시선이 가는 작가님의 작품들에는 마치 상처 같기도 한 자국들이 한가득 찍혀 있었는데 그 또한 고유한 무늬가 되고, 예술이 되어 있었다. 그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보니, 좋아하는 시 한 편이 떠올랐다.
흉터는 보여준다.
네가 상처보다 더 큰 존재라는 걸
네가 상처를 이겨냈음을.
...
흉터는 어쩌면
네가 무엇을 통과했는지 상기시키기 위해
스스로에게 화상 입힌 불의 흔적
네가 네 몸에 새긴 이야기
완벽한 기쁨으로 나아가기 위한
완벽한 고통
흉터는 작은 닿음에도 전율하고
숨이 멎는다
상처받은 일을 잊지 말라고
영혼을 더 이상 아픔에 내어 주지 말라고
너의 흉터를 내게 보여 달라
나는 내 흉터를 보여 줄 테니
우리는 생각보다 가까우니까
- 류시화 '흉터의 문장' 中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이번 생은 망했다고, 벌써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번 해는 망했다고, 오늘 하루는 망했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나의 경험과 작가님의 말과 류시화 시인님의 시가 힘과 위로가 되어주길 바란다. 위의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우리는 생각보다 가까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