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수술이 내일로 미뤄졌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기도를 해주어서인지, 사전 검사나 약물 테스트 등 모든 수술 과정들이 잘 진행되고 있다. 병원 입원 수속을 도와드리고 돌아온 일상, 해 질 녘의 길을 걷는데, 가을 하늘 아래로 져물어가는 햇살이 깊이 스며들었다. 잠시 멈춰, 그 빛을 온몸으로 느껴 보았다. 마침 귓가에서는 '성령이여, 우리에게 오소서'라는 찬양의 "Holy Spirit"라는 가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머릿속을 구름처럼 오고 가는 생각과 걱정과 의도와 계획을 내려놓으니, 투명하고도 밝은 빛이 몸과 마음을 채웠다. 빛을 가리지 않으면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무한한 우주의 원리와 그 안의 수많은 생명들에 대해,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의 원인들을 나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정교한 인과 법칙, 그리고 신의 뜻을 받아들이고 흐를 뿐이다.
'오직 모를 뿐'
내가 안다고 착각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커다란 자유이자 받아들임이며, 이해이자, 사랑이다. 모든 경계를 넘어 본래의 '하나 됨'을 회복하는 그 일체감에는 무엇에도 비유할 수 없는 지극한 행복과 평화가 가득하다. 고통과 아픔의 순간일수록 그런 순간들을 잊지 않고자 한다. 결국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돌아가는 곳을 기억하며, 모든 외부의 조건들과 상황들, 희로애락을 넘어 중심을 잡아본다.
집에 와서 어묵탕을 끓이고 양파장아찌를 담그며 저녁을 차리는데, '내가 그린 나무' 공연에서 들었던 노래가 떠올라 찾아들었다.
'바람의 노래'라는 가수 조용필 님의 노래였다. 한창 세상을 떠돌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노래를 들었을 때처럼, 가사의 단어와 표현들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내 작은 지혜로 이 세상에 대해 다 알 수도, 실패와 고뇌도 비껴갈 수 없다 해도,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해답이라는 것'
그렇게, 영원하지 않아 더 소중한 인연들과 생명들을 그저 사랑하며 사는 삶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