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다시 응급으로 서울 병원에 올라오고 계신다. 오늘이나 내일 수술을 하실 듯하다. 지난주에 바로 수술하자셨던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아빠는 수확철에 일이 밀려 있다며 진통제로 며칠 버티시며 일을 하셨다. 너무 속상했지만 그것이 아빠가 살아오셨던 방식이었다. 아빠는 평생 고통과 아픔을 참고 버텨오셨다. 감각과 감정도 닫아두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릴 때부터 일만 하며, 앞만 보고 살아오셨다.
그러다 몇 년 전 교통사고 이후에는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작년에 수술을 하고 나아지긴 했지만, 아빠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심해지고 나서야 다시 병원을 찾으셨다. 그런 아빠를 바라보며 자꾸만 마음이 일렁거렸다. 그 안에는 안타까움과 답답함과 미안함과 후회가 뒤엉켜있었다.
엉킨 것들을 풀어내고자 과거에 가족 세우기를 하며 배웠던 것들을 떠올렸다. 죽음을 향해 서서 나를 보지 않는 아빠의 대리인을 보고 통곡하던 어린 내가 있다. 아빠는 돌이 되기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당신의 아버지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외로움에 얼어붙어있었다. 나의 울음이 그 얼음을 녹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사랑으로 그 고통을 내가 대신 받고자 했다.
하지만 아빠가 딸인 나에게 진정 바라고 원하는 것이, 내가 아빠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며 뒹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신 아빠가 모든 고통을 인내하며 내게 주신 삶에 감사하며 충실하게 잘 살아가는 것이 모두를 위한 것임을 느끼게 되었다.
상상 속에서 아빠의 두 눈을, 아빠 뒤에 있는 할아버지의 두 눈을 바라보며, 그 뒤에 서 계신 수많은 아빠의 아빠들의 존재를 느끼며 감사를 전한다.
'어떤 삶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어리고 여린 생명들을 지켜주신 아빠, 할아버지, 모든 세상의 아빠들에게 감사합니다. 저는 그렇게 주어진 제 삶을 정성껏 잘 살아가겠습니다. 죽음이 아닌 삶으로, 두려움이 아닌 사랑으로 나아가며 귀한 생명을 기쁨으로 꽃 피우겠습니다. 제 일상을 단단히 잘 살아내며, 가족과 아이들에게 그 생명력과 사랑을 전하겠습니다.'
내 안의 피와 살로, 마음과 의식으로 함께 흐르고 계시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에게 감사와 존경과 경의를 표하며 기도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