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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아스쿨 Oct 27. 2022

위로가 필요한 날엔 '칠리핫초콜릿'

밤새 목이 따가웠다. 가습기를 틀고 젖은 빨래까지 널어두었지만, 건조한 기온에 습기는 금세 사라졌다. 두꺼운 이불마저 바스락거리는 듯했다. 아빠가 수술을 앞두고 계셔서인지 여러 꿈들을 꾸며 몇 번 뒤척이다 찬 기운이 스민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마지막으로 잠에서 깨기 전에 초콜릿을 녹여 핫초코를 만드는 꿈을 꾸었다. 거실에 나가 불을 켜고 몸을 깨우고, 큐티 시간을 가졌다. 매일 아침 마음을 깨우고 씻는 시간이다.  고요한 정적 안에서 기도를 하며 오늘 하루도 하늘의 뜻대로 살 수 있기를 구했다. 매일을 시작하는 나만의 의식이다.


기도를 마치고, 칠리 핫 초콜릿 재료를 준비한다. 작은 편수 냄비에 우유(두유, 귀리 우유 가능)를 한 컵 정도 붓고, 카카오 70 초콜릿(취향에 따라 카카오 함량 조절 가능)을 4조각 잘게 부서 넣어 거품기로 젓는다. 거품이 몇 번 넘치도록 끓어오를 때 불을 낮춰 조절을 한다. 초콜릿이 우유에 잘 녹아 부드러운 거품까지 품었을 때 불을 끄고 잔에 붓는다.


보통은 시나몬 가루를 2,3번 정도 톡톡 뿌리는데, 오늘은 서양의 고춧가루라 할 수 있는 '케이앤 페퍼'를 뿌렸다. 고춧가루보다 가루가 더 곱고 알싸하게 쏘는 맛이 있어, 레몬 디톡스 차나 야채수프나 등에 조금씩 첨가하던 재료이다.


팔팔 끓여 뜨겁고 달콤한 초콜릿 맛의 끝에, 매콤한 향이 목구멍을 따라 흘러들어온다. 왠지 목 안에 걸려 삼키지도 뱉지도 못했던 슬픔과 걱정이 달래지는 기분이 든다. 풍성한 거품이 목까지 차올랐던 감정들을 함께 녹여내는 것만 같다. 달달하고 따뜻한 온기가 가슴 전체에 퍼질 때면 성난 동물의 털처럼 빳빳하게 일어났던 마음들이 다시 부드럽게 가라앉는다.

문득, 아주 오래전 보았던 초콜릿이라는 영화의 몇 장면이 떠올랐다. 규칙과 규율을 잘 지키며 사는 엄숙한 분위기의 마을에 한 여자가 나타나 초콜릿 가게를 연다. 그녀가 만드는 초콜릿들은 여러 틀 안 속에 사람들의 마음을 열여주고, 잃었던 기쁨과 열정을 되찾아준다. 사람들의 정신을 각성시키고 기분을 좋게 해서 '신의 열매'라고 불렸다는 카카오에 설탕, 생크림, 견과류와 각종 향신료에 따라 만들어지는 초콜릿에는 실로 그런 힘이 있다.


피곤하고 지쳐 머리가 멍할 때, 아픔과 고통에 묻혀 그를 뚫고 나올 힘이 필요할 때, 삶이 무료하거나 무거워 그를 전환할 기쁨을 충전하고 싶을 때 나는 초콜릿을 찾곤 한다.


특히 나를 얼게 하는 감정이나 기억들로 뜨거운 위로가 필요한 날, 나는 핫 칠리 초콜릿을 끓여마신다.


그렇게 맵고, 뜨겁고, 달콤한 위로로 나를 채우고, 그를 또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전할 수 있는 날이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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