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일을 끝마치거나,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나서는 제대로 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침대나 소파에 눕거나 기대앉아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시간은 잘 가긴 하지만, 쉬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한참을 웹툰이나 영상이나 여러 기사들을 뒤적거리고 나면, '내가 뭘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든다. 필요한 물건들을 검색한 기록은 SNS의 광고로 이어지고, 나의 취향에 맞춰진 추천 영상이나 자료들은 끝도 없이 밀려온다. 수많은 창이 열린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빨리 닳듯이, 한꺼번에 여러 정보나 자료들을 소비하는 나의 마음도 금세 소진되는 느낌이 든다.
분명 쉬고자 했던 건데, 내가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느낌이다.
그럴 때는 분위기를 전환해서, 핸드폰을 내려놓고, 숨을 쉰다. 숨을 쉬는데 집중할수록, 몸도 마음도 함께 쉬어지는 게 느껴진다. 수많은 자극들에 분산되어 있던 조각난 마음들이 다시 몸 안으로 돌아오는 것만 같다.
자연 속을 걸을 때도, 저절로 깊고, 느린 숨이 쉬어진다.
이렇게 온몸에 골고루 가닿게 숨을 쉴 때, 몸과 마음도 제대로 쉬는 느낌이 든다. 나의 숨은 몸과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수신호이자, 몸마음을 채워주는 충전기와 같다.
편안하고 깊은 호흡을 위한 산책을 할 때엔, 가능한 나무들이 많이 서 있는 자연 속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북미 인디언들은 나무들을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렇게 한 자리를 지키며 오랜 시간 동안 서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헤르만 헤세의 글귀를 떠올린다.
나무는 우리보다 오랜 삶을 지녔기에 긴 호흡으로 평온하게 긴 생각을 한다.
우리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동안에도 나무는 우리보다 더 지혜롭다.
하지만 우리가 나무의 말을 듣는 법을 배우고 나면, 우리 사유의 짧음과 빠름과 아이 같은 서두름은 비할 바 없는 기쁨이 된다.
나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는 나무가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 말고 다른 무엇이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이다.
-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中
외부의 자극들이나 정보들이 어느 때보다 넘쳐나는 시대에, 숨을 고르며 나무의 말을 들을 때, 무언가를 더욱 찾거나 갈망하는 마음들은 사그라들고, 이미 충분한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 진정한 쉼의 느낌을 준다. 매일 이러한 쉼의 시간을 잊지 않고 키워가고 싶어 글로 담는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도, 나무의 깊고 긴 호흡이, 평온한 쉼의 순간들이 전해지기를 기도한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