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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피스 Mar 26. 2020

퍼즐

성장기

  

나는 초등학생 이전의 내가 생각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5살 이전도 기억한다는데, 나는 도무지 기억나는 게 없다. 명상을 많이 하면 아주 어릴 때, 심지어 태아 때의 일도 떠오른다는데, 나는 아무리 명상을 해도 잡생각만 날 뿐이다.

 

그래도 8살 이전의 일을 머릿속에서 잡아보려고 한다. 첫 기억은 7살 때이다. 나는 유치원 대신 미술학원을 다녔다. 그 앞에는 달고나 장수가 있었다. 아저씨는 수저 위에 설탕을 놓고 끓이면서 젓다가 굳히면서 모양을 만들었다. 학원이 끝나면 달고나 장수 주위에 아이들이 많았다. 나도 아저씨를 구경하고 달콤한 과자를 먹으며 집으로 걸어갔었다.


그해 겨울에는 미술학원에 선물을 사다 주었다. 학원에서 성탄절에 각자가 받고 싶은 걸 포장까지 해서 선생님에게 맡기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산타 분장을 한 사람이 선물을 나눠줬는데, 나는 미술학원에 준 내 시계를 그대로 받았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명확히 기억이 나는 건 이것뿐이다. 그 이전은 선명하지 않다. 다만, 흐릿하게 회색빛 콘크리트 벽을 오른쪽에 두고 회색빛 계단에 앉아 있던 기억이 있다.


그 계단을 내려가면 왼쪽에 작은 마당이 있고, 계단 밑에는 다른 가족이 사는 반지하방이 있었다. 미닫이문인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마루가 나왔다. 나는 그곳에 차려진 상에서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밥과 국을 얻어먹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어릴 때 모습이다.


이제 이걸 바탕으로 얘기를 짜 맞춰 본다. 내가 봤던 사진과 어릴 때 듣던 이야기로 말이다. 지금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해 물어보고 싶지만 그건 어렵다. 나와 만나기는커녕 전화통화조차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다가 답답해 전화를 해 봤지만, 그 얼음장 같은 목소리에 주눅이 들어 제대로 말도 못 하고 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러니, 조각난 기억들과 얘기들로 어린 시절을 재구성해본다. 일단 엄마는 내가 태어나고 다음 해에 내 여동생도 낳았다. 엄마는 잠시 외할머니 집에 나를 맡겼다. 엄마가 동시에 둘을 보기는 힘들었나 보다. 지금은 인연이 끊어진 막내 이모가 나를 안아 키웠다고 했다. 이모는 아침에 닭이 계란을 낳으면 제일 좋은 놈을 골라 나를 먹였다고 종종 말했다. 


엄마는 나와 내 동생을 키우면서 다시 임용고시에 합격해 서울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한다. 아버지는 원래 일하고 있었고, 엄마도 이제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낮에는 누가 나와 내 동생을 돌봤을까. 


전에 들은 얘기를 떠올리면 막내 이모가 시집가기 전에 잠시 시골에서 올라와 같이 살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를 돌보지는 않은 것 같다. 나에게 말을 하기 좋아했던 이모가 서울에서 나를 봐줬다면 그걸 말하지 않았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어린 나와 내 동생을 돌봤을까. 남은 후보자는 친할머니이다. 친할머니는 월계동에 살았고, 우리 집은 멀지 않은 상계동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갔고, 아래층 반지하는 세를 줬다. 단칸방에서 어떻게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친할머니가 평일에 우리 집에 와서 나를 봐준 적은 없다. 엄마는 할머니를 정말 싫어했기 때문이다.


맞다! 엄마는 아래 집에 사는 사람에게 나와 내 여동생을 봐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나는 밑에 집 아줌마가 싫었다. 밥도 맛이 없었고, 아줌마도 나와 동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동생과 현관 앞 계단에 앉아 하루 종일 있었다. 아랫집에서 점심만 얻어먹고, 계단에서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다. 우리는 같이 얘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대문만 쳐다봤다. 당시 엄마는 해가 떨어져야 집에 왔다. 초등학교 1학년 때도 엄마가 집에 없었으니 엄마를 기다리는 생활은 수년간 이어진 것이다.


살면서 차가 막히고, 줄을 서는 일은 늘 일어난다. 나는 그게 너무 힘들었다. 화가 나고 답답했다. 기억의 퍼즐을 맞추다 보니 내가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기다림은 언제나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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