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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피스 Mar 27. 2020

컬러텔레비전

성장기

“이 엄마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엄마는 나에게 입버릇처럼 이 말을 반복했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부터 부부싸움을 반복했다. 아버지가 화를 내면 엄마도 지지 않고 같이 맞섰다. 그럴 때면 나와 동생은 부모님이 이혼해서 뿔뿔이 흩어져 살까 항상 걱정했다. 그래도 나는 우리 가족이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인간관계가 서툴고 아부는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오로지 일만 해서 9급에서 출발해 서기관으로 정년퇴직을 하셨다. 살면서 허튼짓 한번 안 했다. 본인이 강조하듯 ‘뼛심’을 들여 일하고 가정을 지켰다.


엄마는 나를 공부시키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 독서실에서 졸고 있으면 엄마가 독서실에 몰래 들어와 귀싸대기를 때렸다. 재수할 때나 심지어 사법시험공부를 할 때도 매일 학원과 도서관으로 나를 실어 날랐다.


엄마는 결혼 이후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부잣집 딸로 자란 엄마는 원래 생활력이 없었다. 그런데 너무 가난한 집으로 시집온 이후 단칸방을 벗어나기 위해 근검절약했다.


우리 집은 외식을 한 적이 없다. 엄마는 학교에서 퇴근하고 와서도 저녁을 항상 손수 차리셨다. 엄마는 솜씨가 좋아 우리는 찌개나 생선구이 하나와 김치로 밥을 먹어도 맛있었다. 다른 반찬은 필요 없었다. 우리 가족은 휴가를 가도 호텔이나 여관을 가 본 적이 없다. 그 대신 텐트를 차에 싣고 다녔다. 


동해 하조대에서 텐트를 치고 잘 때 누군가 칼로 텐트를 찢고 아버지 지갑을 가져간 일도도 있었다. 토끼 모양인 우리나라에 발가락에 해당하는 상주해수욕장까지 가서 텐트를 치고 자고 오기도 했다. 


우리는 휴가를 가도 음식점에 가지 않았다. 엄마는 쌀과 김치, 코펠과 그릇을 준비해 차에 실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적당한데 차를 세우고 밥을 했다. 깜깜한 밤중에 갓길에 차를 세우고 밥을 말아먹던 고추장찌개, 불영계곡에서 끓인 안성탕면과 열무김치는 지금까지 생생하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밖에 식당과 여관이 왜 있는 건지 의아했다. 밖에서 돈을 내고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이렇게 모은 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일이 많았다. 은행보다 이자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유혹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야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겪고 있는 가난에서 벗어나고, 엄마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그것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내 기억에 부모님은 빌려준 돈을 떼이는 일이 많았다. 벽에 붙어 있던 우리 집 가훈은 ‘성실하고 튼튼하자’였다. 하지만, 엄마가 나에게 항상 강조하던 것은 ‘돈은 절대로 꾸지도 말고 꿔주지도 말라’였다. 그만큼 엄마는 빌려준 돈을 떼인 경우가 많았고, 화병으로 자주 누워있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세상은 전부 우리를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뿐이니 친구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엄마의 원수를 갚아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나는 엄마가 말하는 원수가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게 돈을 떼먹는 채무자들인지 아님 결혼해서 엄마에게 화를 내는 아빠와 시댁 식구들인지, 아니면 엄마를 차별하고 무시했던 친정 부모와 그 형제들인지 말이다. 아마 세상 모든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실제로 채무자를 본 적도 있다. 어느 날 아침 어떤 아줌마가 집에 와 부모님과 심각하게 얘기를 했다. 나는 엄마가 안방에서 나오지를 않으니 학교에 갈 수가 없어 결국 지각하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줌마는 돈을 안 갚는 채무자였는데, 공무원인 아버지를 상대로 협박을 했고, 결국 부모님은 그 사람에게 돈 받기를 포기했다. 


어느 날 밤에는 부모님이 돈을 떼먹고 도망간 사람을 만난다며 수유리로 찾아갔다. 부모님은 그 집 마루에서 누군가와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우두커니 있다가 그 집 안방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을 보았다. 그 빛은 텔레비전에서 나오고 있었다.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뉴스 자막인 하얀 글씨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화면을 보니 빨간색, 파란색이 나왔다. 내가 처음 보는 컬러텔레비전이었다. 우리 집에 있는 겉은 나무고 화면은 어두움과 밝음만 구별되는 구식 텔레비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린 나는 말로만 듣던 컬러텔레비전을 처음 봐서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겪었던 억울함은 점차 나에게 전해져 그 후 나도 세상을 의심하고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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