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
나는 얼굴을 몇 번 꿰맨 적이 있다. 지금은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잘 생각도 나지 않는 소소한 일들이었다. 누구처럼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은 없으니 다행이기도 하다. 그래도 가끔 그때 아찔했던 순간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복돌이 다음으로 우리 집에 들어온 강아지는 방울이였다. 치와와였는데 복돌이의 교훈이 있어서 집 안에서 키웠다. 방울이는 집에 사람이 들어오면 양말을 벗겨 입에 물고 놀기를 좋아했다.
나는 장난을 치기로 했다. 방울이가 한눈파는 사이 갖고 놀던 양말을 뺏었다. 계속 방울이가 쫓아와서 양말을 물려고 하면 물려주는 척하다가 피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방울이가 잡을 뻔하다가 놓치는 걸 보는 게 재밌어서 급기야 양말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방울이를 뛰어다니게 했다.
방울이가 숨을 헐떡이는 사이 나는 가만히 입 앞에 양말을 들이밀었다. 방울이는 나를 보더니 이빨을 슬쩍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나는 그대로 있었다. 방울이는 눈치를 보다 양말에 슬쩍 코를 댔다. 이윽고 방울이가 입을 벌려 양말을 물려는 찰나에 나는 확 빼서 내 등 뒤로 감췄다.
그때였다. 갑자기 방울이가 큰소리를 내더니 나를 향해 펄쩍 뛰어올랐다. 나는 깜짝 놀라 뒤로 피했다. 내 얼굴에 뭔가 느껴졌고, 순간 얼굴이 얼얼해졌다. 잠시 후 내 가슴이 피로 적셔졌다. 내 턱을 방울이가 물어버린 것이었다. 내 입술이 두꺼워 흉터가 가려져서 다행이었다. 얼굴 다른 곳을 물렸으면 큰일 날 뻔했다.
하루는 정육점에 갔을 때였다. 그때는 정육점에 고기를 주문하면 큰 원형톱날을 모터로 돌려서 살을 얇게 잘라주었다. 동네 정육점이고 다들 아는 사이라 그런지 안쪽에 들어가서 고기 자르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엄마는 삼겹살을 주문했다. 아저씨는 원형톱날을 작동시켜 고깃덩어리를 얇게 자르기 시작했다. 나는 크고 번쩍이는 칼날이 빠르게 돌아가는 게 신기해 그 앞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 “야”하면서 내 등을 쳤다. 그때 나는 앞으로 밀려 고꾸라져 넘어졌다. 그리고 아차 하는 순간 내 얼굴이 원형톱날에 닿았다.
그다음 기억나는 건 수술대에서 몸부림치던 나와 그 위를 비추던 노란 조명뿐이다. 알고 보니 내 친구가 나를 발견하고 반가워 등을 친 것이었다. 나는 내 눈두덩이의 피부가 잘려나갔다. 조금 더 앞으로 밀렸다면 고기 대신 내 눈알이 잘릴 뻔했다.
하나 더 기억나는 사건이 있다. 겨울이었는데, 아침에 보일러가 고장이 나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목욕탕에 코펠을 놓고 세숫대야에 물을 끓였다. 그리고, 찬물에 펄펄 끓는 물을 조금 섞어 쓰라고 하셨다.
나는 세수를 하기 위해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그런데 앉는 순간 내 엉덩이가 코펠 위의 세숫대야를 건드렸다. 그러자 세숫대야가 무너지며 끓는 물이 내 발로 쏟아졌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목욕탕에서 뛰어나왔다. 발이 타는 듯했다. 내 비명 소리를 듣고 엄마가 나왔다. 엄마는 급히 찬물을 대야에 담아 내 발을 담갔다.
내 비명 소리를 듣고 윗집 할머니가 나왔다. 할머니는 자초지종을 듣고는 소리쳤다.
“쐬주에 발을 담가”
그런데, 엄마는 쐬주라는 말을 석유로 알아들었다. 집에 있는 등유를 대야에 가득 붓고 화상 입은 내 발을 담갔다. 나는 오히려 더 발이 아픈 것 같았다. 참다못해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발이 더 뜨겁고 아파”
“그게 나으려고 그러나 보다, 좀만 참아”
엄마는 나를 달래다 결국 학교 앞 병원으로 나를 데려갔다. 의사는 석유에 발을 넣었다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했다. 그제 서야 우리는 할머니가 말한 것이 석유가 아니라 소주를 뜻한 것임을 알았다.
아직 내 발에는 그때의 흉터가 있다. 그때는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은 그 흉터를 보면서 미소가 지어진다. 지금의 힘든 시간도 추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