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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피스 Mar 31. 2020

필남이

성장기

나는 엄마와의 학교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아이들의 특별대우는 계속 이어졌다. 나는 4학년 6반이었는데, 엄마는 1반이었다. 엄마의 교실과 내 교실은 바로 대각선에 있었다. 나는 심심하면 엄마 교실로 놀러 갔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엄마 교실에 있었다. 엄마는 수업이 끝난 오후에는 의자를 붙이고 책상 사이에서 주로 낮잠을 잤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며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농구, 축구를 하는 걸 구경하며 엄마가 퇴근할 때를 기다렸다. 


점점 반 아이들과 친해졌다. 오후에 친구 집에서 보드게임을 하는 때가 많았다. 하루는 친구 집에서 블루마블을 할 때였다. 갑자기 “호외요”하는 소리가 동네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친구가 나갔다 들어오더니 신문지를 들고 와 외쳤다.


“야, 김일성이 죽었대”


놀던 우리는 그 소리에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부둥켜안았다. 그때는 만화에도 북한군이 승냥이로 그려질 때였다. 하지만, 다음날 김일성의 사망 소식은 오보로 알려져 학급 전체가 실망했다. 


선생님 아들은 학교에서 먹을 것도 많았다. 엄마 교실에 나눠주던 우유가 남으면 다 내 차지였다. 점심에는 학교에서 급식을 했는데, 점심을 먹고 엄마 교실로 가면 남은 반찬도 더 먹을 수 있었다. 가끔 엄마가 학교 앞 식당에서 시키면 급식에 더해 백반도 먹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 운동회나 소풍 가는 날이면 먹을 게 쏟아졌다. 그때는 학부형들이 선생님 먹을 음식들을 잔뜩 싸 왔기 때문이다. 운동회가 끝나고 엄마 교실로 가면 각종 음료수며 빵, 김밥이 가득했다.


학교에서의 소위 ‘인싸’ 생활은 계속되었다. 학기 말에는 반에서 연극을 했다. 반 아이들이 역할을 맡아 대사를 외웠다. 연극 날 학급 중앙에 책상을 모두 붙여 무대를 만들었다. 역할을 맡지 못한 학생들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구경했다. 


나는 주인공인 왕 역할을 맡았는데, 옆 반 선생님인 엄마도 와서 내 연기를 구경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나를 칭찬하니 내가 정말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참 많이 때렸다. 엄마는 결혼도 안 한 처녀 선생이 더 때린다고 했다. 사실 그때는 아이들이 맞는 건 늘 일어나는 일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반 아이 하나가 잘못해도 전체가 책상 위에 무릎을 꿇고 올라가 눈을 감게 했다. 1 분단부터 차례대로 돌면서 몽둥이로 허벅지나 발바닥을 때렸다. 


아이들은 눈을 뜨면 더 맞았기에 눈을 꼭 감고 있어야 했다.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선생님의 몽둥이 소리는 공포스러웠다. 나는 선생님 아들이라 좀 봐주셨는지 다른 애들 만큼 맞지는 않았다.


나는 특별대접을 받고 있다는 자신감에 4학년 때 나쁜 짓도 했다. 반에서 나를 포함한 몇 명 공부 잘하는 애들과 짜고 커닝을 한 것이다. 시험시간에 선생님의 눈을 피해 서로 수신호를 주고받고 정답을 교환했다. 그때는 정말 생각이 없었다.


그런 우리 반에 바른생활 아이가 하나 있었다. 이필남(李必男)이라는 여자아이였다. 필남이는 큰 키에 얼굴에 주근깨가 많고 긴 머리를 말총 모양으로 동여맸다. 그 아이는 수업시간에 항상 허리를 똑바로 펴고 열중쉬어 자세로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봤다. 적극적이고 바른 행동만 하는 아이였다. 나는 그런 필남이와 3학년부터 4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나는 항상 부반장을 했다. 반장 선거를 하면 필남이를 이길 수 없었다. 선생님 아들이라는 것도 소용이 없었다. 한 번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은 사람이 없어서 나와 필남이 두 명만 결선투표를 했다. 나는 반에 남자애들이 더 많았으므로 이번에는 이길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결선투표에서도 역시 아이들은 압도적으로 필남이를 지지했다.


필남이는 공부도 잘했다. 그때 나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젖어 있었기에 다른 사람에게 지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시험을 보면 필남이가 나보다 항상 잘했다. 그렇게 바른 자세로 있기에 공부를 잘하나 싶어 나도 필남이를 따라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내가 남자 중에서는 1등이라고 위안 삼았다. 더군다나 그녀는 잘난 척도 하지 않아 정말 미워할 수 없었다. 그때의 필남이는 나에게 ‘넘사벽’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연락이 끊긴 필남이를 대학생이 되어 우연히 다시 만났다. 다른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던 선생님 아들도 쉽게 넘어버리던 필남이. 나는 그녀가 명문대를 진학하고 여전히 꿈을 향해 달려가는 예쁜 여대생이 되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필남이의 모습은 내 예상과 많이 달랐다. 


필남이는 착하고 명랑했지만 가끔 보이는 뭔가 체념한 듯한 태도에서 예전의 자신감을 찾기 어려웠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차마 당사자에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혹시 우리 엄마처럼 남자에 차별받는 운명을 타고나서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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