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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Apr 14. 2016

하진욱

돌아온 보이스카우트 소년

캠프가 끝났다.


활활 타오르던 캠프파이어는 끝내줬고, 우리는 마지막 밤이 아쉬워 끈질기게 하품을 하며 긴긴밤을 견뎌냈다. 그리곤 버스에서 장렬히 전사. 모두 자리에 앉자마자 우수수 쓰러져 잠이 들었다. 장담컨대, 캠프를 마치고 돌아오는 세상의 모든 보이스카우트 버스 안은 말끔히 전멸일 것이다.


마지막 불씨까지 모조리 태워버린 장작더미처럼, 까뭇까뭇한 아이들은 아무렇게나 포개어져 좌로 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유일하게 나만 빼고 말이다.


그때 나는, 정신없이 흔들리던 옆자리 친구가 머리통을 내 어깨에 꿍 박아버린 통에 눈을 떴다. 왼쪽 어깻죽지가 저릿했다. 살살 팔을 주무르자, 찌릿한 통증이 손바닥으로 빠져나갔다. 에이씨. 나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깨어있는 사람은 기사 아저씨와 나. 둘 뿐이었다. 도무지 통제 불능인 남자애들만 삼십여 명이 모여있는데, 이토록 조용한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몽롱한 눈을 끔벅거렸다.


조용한 버스 안. 저마다의 숨소리와 작은 코골이가 시계 초침처럼 쿨쿨, 규칙적인 소리를 냈다. 달짝지근한 과자 냄새와 매캐한 먼지 냄새, 시큰한 땀 냄새가 한데 뒤섞여 묘한 냄새를 만들었다. 그리 나쁘진 않았다.


버스 창문을 가려둔 커튼 위로 탁한 주황색 햇살이 비춰들고 있었다. 공기 중을 부유하는 작은 먼지들이 반짝이며 빛났다. 시간과 냄새와 빛이 흐르지 않고 이곳에 머물러,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버스는 달리고 있었다.


이상했다. 마치 해 질 녘의 사막, 그것과 비스름한 행성을 여행하는 기분이랄까. 사막 따위 가봤을 리도 없지만, 꼭 그런 기분이 들었다.

영화 '문라이즈 킹덤' 스틸컷

아직도 얼얼한 왼손을 잼잼 거리며 창문 커튼을 걷어 젖혔다. 예상치 못하게 강렬한 햇살이 쏟아졌다. 겨우 실눈을 뜨고서 창밖을 살펴보았을 때, 노랑, 파랑, 초록. 빛의 잔영이 먹먹한 풍경을 가로질러 커다란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을 둘러싼 서너 차선의 도로 위로 개미떼 같은 자동차 행렬이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 엄지손톱만치 조그만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왈칵, 하고 무언가 차올랐다.


집이다!


우리 집이었다. 이박 삼일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랬다. 나는 지금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보이는 강은 거기가 다 거기 같고, 달리는 길은 그 도로가 다 그 도로 같은데, 다 똑같아 보여도 나만 구별할 수 있는 아파트가 있다니 정말 신기했다. 이렇게 멀리서도 우리 집을 찾아낼 수 있구나. 흐뭇했다. 캠프를 떠나던 그 날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렴풋한 설렘이 심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버스는 빙그르르 코너를 돌아 익숙한 길로 들어섰다. 나는 창문에 얼굴을 바싹 갖다 댔다. 창밖으로 크고 작은 상점과 횡단보도와 나무들이 지나갔다. 매일 오가던 길인데도 오늘은 좀 달랐다. 지는 햇살을 머금고 발그스름하게 빛나는 풍경들이 다정했다. 버스는 서서히 속력을 줄였다. 이윽고 학교 정문으로 들어섰다.


“야야! 다 왔어.”


나는 자는 애들을 흔들어 깨웠다. 동그란 남색 모자들이 하나둘 고갤 빼 들고 일어났다. 버스 안은 금세 시끌시끌, 다시 요란스러워졌다. 우리는 운동장에 모여 간단한 해단식을 했다.

집으로 가는 길.


나는 배낭끈을 부여잡고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덩달아 내 심장도 세차게 뛰었다. 배낭에 욱여넣은 물건들이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냈다. 나는 더 신이 나서 달려갔다. 엄마. 엄마!


“나 왔어!”


현관문을 열자, 맛있는 냄새가 와락 달려들었다.


“아들 왔어? 배고프지?”


그리고 엄마가 웃으며 나를 반겼다. 엄마는 저녁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나는 배낭이며 모자, 양말, 스카프, 단복을 훌렁훌렁 벗어던졌다. 그리곤 곧장 밥상 앞에 앉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등어조림이 올라와 있었다. 아직 폴폴 김이 났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와앙, 한 입 먹었더니.


“엄마, 맛있어. 진짜 맛있어!”


맛있는 고등어조림, 웃는 엄마, 그리고 따뜻한 우리 집.

이제야 돌아왔다.





“보이스카우트 단장이셨어요?”

“네. 단장이긴 했는데, 캠프에서 일들은 기억나는 게 거의 없어요.”

“그럼요?”


“캠프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날. 그날이 생생하게 남아있어요. 진짜 특별한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저는 그날 저녁 메뉴까지 다 기억나요. 아부지가 집에 안 계셔서 엄마랑 둘이 밥을 먹었어요. 고등어조림을 상추쌈에 싸 먹었는데, 우와! 우와! 맛있어! 소리를 지르면서 먹을 정도로 진짜 맛있었어요. 그게 맛도 맛이지만 뭐랄까... 엄마 맛이죠. 익숙한 맛. 집에서 엄마가 해준 음식을 편안한 마음으로 먹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안도감? 반가움? 아무튼, 한없이 좋은 그런 느낌. 이제야 돌아왔다는 느낌이었어요.”





두 번째 사람글.

'하진욱' 님의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사람들> 기획 이야기 읽어보기

https://brunch.co.kr/@daljasee/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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