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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Nov 29. 2017

올 나간 티셔츠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나무 의자에 걸려 티셔츠 올이 나갔다. 겨우 올 하나 나갔을 뿐인데 내보이기 부끄러운 옷이 되었다. 수천수만의 촘촘한 올 가운데 빗금처럼 나가버린 실오라기 하나가 유독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이 옷은 이제 밖에서는 입지 못할 것이다.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마음은 올이 나갔다고 해서 밖에 내보이지 않으면 그만일 수 없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따끔거린 날이 있었다. 그날 하루 나는 그 마음을 입은 채로 돌아다녔다. 어깨를 펼 수 없고 대화할 수 없고 웃을 수 없었다. 상처받은 마음은 그렇게 티가 났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나와 마주친 사람들은 빤히 쳐다보았을 것이다. 떼어주고 싶은 부스러기 같은, 가려주고 싶은 얼룩 같은, 정리해주고 싶은 보풀 같은 나의 마음을. 부끄러웠다.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올이 나가고, 얼룩이 묻고, 낡고 닳고 헤진 마음. 하지만 감추려 하면 할수록 도드라지기에 나는 그냥 두기로 했다. 주변 시선에도 꿋꿋이 앞만 보고 걸었던 그날처럼.


티셔츠에 길게 삐져나온 실오라기를 매듭지어 끊어주었다. 갈아입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제야 아무렇게나 입기에 좋은 옷이 된 것 같다고. 더 자주 손이 갈 것 같다고. 어느샌가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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