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보다 더 나이 들어 보여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by 고수리
라다크의 노인들은 생활의 모든 부분에 참여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이 할 일이 없어 허공을 멍하게 바라본다거나 소외되거나 외로워하는 경우는 없다. 노인들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공동체에서 중요한 구성원이다. 라다크에서 나이가 들었다 함은 곧 값진 지혜를 가졌다는 의미이다. 그들에게 나이 들어 가는 일은 자연계 순환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진다.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 "지난번보다 더 나이 들어 보여요." 하고 말한다. 이는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와 같이 자연현상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현상 그 자체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들은 세월이 흘러가는 데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살아갈 필요가 없다.
-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41p '오래된 미래'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책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지난주 친정집에 내려갔을 때 엄마 책을 꺼내 읽었다. 목차 중 두 군데에 별표가 그려져 있었다. 하나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다른 하나는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엄마는 입버릇처럼 "나이 들면 숲에서 혼자 자유롭게 살고 싶다." 말한다. 그러다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곡기를 끊고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그 얘길 들을 때마다 엄만 아직 창창하게 젊은데 벌써부터 죽는 얘길 한다며 나는 부루퉁해진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우리 엄마도 나이가 들고 언젠가 죽는다. 그 사실이 나는 아직 무섭다. 어렵고 아프고 두렵고 싫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엄마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엄마에게 삶은 뭘까. 행복은 뭘까. 죽음은 뭘까. 엄마가 추구하는 가치와 살고 싶은 삶에 대해 짐작해 봤다. 밤새 퍼붓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엄마가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깨끗한 물을 화초와 바닥에 뿌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엄마만의 오랜 아침 의식이었다. 딸 일어났냐며 엄마가 웃는다. 오랜만에 본 엄마 얼굴이 반가웠다. 엄마는 어젯밤보다 더 나이 들어 보였다. 나이테가 늘어난 나무처럼 튼튼하고 아름답고 지혜로운 얼굴이었다.


영화 <앙> 스틸컷



@suri.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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