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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Jul 22. 2018

우리 모두에게는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

금요글방 <마음 쓰는 밤> 첫 번째 밤의 기록

"빵집 아들의 운명은 도넛이다. 그렇기에 늘 텅 비어 있고,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 수밖에 없다."


김민철 작가는 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에서 이 문장을 읽고 자신의 운명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인정한다. 어두운 면을 가진 자신은 검은 건반이라는 것을.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이라는 것을. 오랜 시간 인정할 수 없었던 자신의 단점과 태생적인 결핍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순간, 무거웠던 삶이 가벼워졌다. 자신이 좋아졌다.


<마음 쓰는 밤> 첫 번째 밤.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해 써보는 시간을 가졌다. 김민철 작가의 글 '그냥 그렇게 태어나는 것'을 읽고, 나를 상징하는 한 가지 사물을 정해 나를 재정의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의 약점이나 단점, 결핍을 떠올려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는 시간이었다.


소란한 금요일 밤에 모여 글 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여기에는,


석류였던 사람, 물이었던 사람, 그네였던 사람, 검은 병아리였던 사람, 바다 한 가운데의 바다였던 사람, 택시였던 사람, 나무토막이었던 사람, 연필이었던 사람, 티비였던 사람, 삼색 신호등에 황색 신호였던 사람, 주사위였던 사람.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나이도 직업도 모른 채, 이름과 눈빛과 문장과 자신의 이야기로만 서로를 알아간 네 시간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따뜻했다.


내 마음의 소리에, 타인의 이야기에 이렇게 주의 깊게 귀 기울여 본 적이 있었던가. 들어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이해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싶었다.


인상 깊었던 멤버의 글을 옮겨 적어본다.


나는 연필이었다. 선명하게 쓰여지는 볼펜도 아닌, 값비싼 만년필도 아닌 연필. 화려하지 않은 나무로 만들어진, 무른 흑연을 품고 있는 연필.

나는 수수하다. 화려하지 않다. 강하지 못하고 모질지 못하다. 마음이 쉽게 연필심처럼 부러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부러져도 다시 깎으면 새로운 심이 드러나는 연필처럼, 힘든 일을 겪고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순간에 나는 비로소 새로운 나로 변모하게 된다.

뭉툭해지면 또 다듬고, 사용하고 나면 또 다듬어서 날카로운 심을 만들어내는 연필은, 끊임없이 성찰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려는 나와 비슷하다.

나는 무언가 강단 있게 결정 내리지 못한다. 사각사각 부드럽게 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한 번 연필로 새긴 이름은 쉽게 지울 수가 없는 것처럼. 한 번 마음에 둔 사람은 연인, 친구, 지인. 모두 쉽게 잊지 못하는 미련 맞은 성격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마모되면 그곳을 깎아내고 새로운 이름을 적는다. 이전의 이름들은 완전히 지워지듯 깨끗이 잊는다.

연필도 언젠가 그 수명을 다한다. 나도 연필처럼 유한한 삶을 살 것이다. 나는 더 이상 흑연이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계속 내 삶을 이어 나갈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밤. 좋은 밤이었다.



@suri.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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