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고, 미워하라고, 두 눈으로 보라고
중학교 1학년 아이들과 글쓰기 시간. 소설을 쓰고 있다는 한 아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선생님 제가 전부터 쓰려고 생각했던 이야기인데요. 라며 진지하게 자기 소설 이야기를 한다.
엄마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 여자애 얘기랬다. 왜 사랑하지 않을까? 묻자, 아이는 '그냥요.' 대답한다. 혹시 자전적 이야기일까 해서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런데 이어진 아이의 말이 참 긴 여운을 남겼다.
선생님,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데 이유가 있나요?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잖아요. 엄마라고 무조건 사랑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쓰려는 소설은 사랑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이야기예요. 엄마를 별로 사랑하진 않지만, 함께 지내온 시간이 사랑보다 더 큰 마음을 만드는 거죠. 그걸 뭐라 정확하게 표현할 순 없지만, 소설로 쓰다 보면 알게 될 거예요. 그런데 너무 길고 부담스러워서 다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나는 일단 시도해보라고 했다. 이번에는 첫 문장과 첫 페이지까지라도 한 번 써보자고. 나머지 이야기는 계속해서 쓰면 되니까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해주었다.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적 있다. '우리는 우리가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사랑하라고, 미워하라고, 두 눈으로 보라고 혹은 눈을 감으라고.'
어떤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건다. 쓰기 위해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내내 맴돌고 사무치다가 끝내 손끝으로 써지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이야기 하나쯤은 있다. 쓰게 될 테지만 쓰기까지가 너무 어려운 이야기. 결국 방법은 하나뿐. 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다.
나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열여덟에 썼던 초고를 고치고 고쳐서 서른이 넘어서야 완성했다. 읽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만 아는 길고 긴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 아이의 소설이 언제쯤 완성될진 모르겠다. 하지만 응원한다. 온 마음을 다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