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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Feb 10. 2019

내가 당신의 고통과 함께 할 수 있을까

레슬리 제이미슨 <공감 연습>

내 직업은 의료 배우, 환자 연기를 하는 사람이다. ㅡ 레슬리 제이미슨의 <공감 연습>을 읽었다. 작가는 가상 환자에 관한 12페이지 분량의 대본을 숙지하고 고통을 연기하는 의료 배우로 일했다. 그녀는 자신을 대면하는 의대생들의 공감 항목을 시험하기도 했지만, 그녀 스스로도 고통을 연기하며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법을 연습했다. 그랬던 그녀가 실제로 고통받는 환자가 되었을 때의 경험을 고백하며 진정한 공감이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찾는다.


단순히 표지와 '부서진 심장과 고통과 상처와 당신에 관한 에세이'라는 카피에 끌려 읽었다. 하지만 읽는 동안 좀 힘들었다. 고통의 고백들이 쏟아진다. 당신은 가짜 공감을 건네지 않았는지 꼬집는다. 나에게 이 책은, 언제든 고통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끝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순 없는, 그런 '당신에 관한' 에세이로 읽혔던 것 같다.


글을 쓰는 나는 '공감'과 '위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쓰면서도 늘 조심스럽고 어렵고 무겁다. 최근에는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이 걱정되어 가끔 메시지를 보내는데, 휴대폰을 손에 들고도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한참을 고민한다.


결국엔 그저 그런 말들, 진부한 말들을 전송하고 만다. 혹시나 그가 부담스러워하는 건 아닐지. 오히려 상처 받는 건 아닐지. 이런 나의 진심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닐지 조마조마해하면서. 당신과 같은 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당신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을까. 나아가 위로할 수 있을까. 이러다 그저 연민으로만 그치는 것 아닐까. 걱정스럽다.


수전 손택은 공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연민이 내 삶을 파괴하지 않을 정도로만 남을 걱정하는 기술이라면 공감은 내 삶을 던져 타인의 고통과 함께하는 삶의 태도라고. 레슬리 제이미슨도 말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려는 의도와 노력을 믿는다고.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의도와 타인의 마음 상태나 정신 상태 속으로 들어가려는 노력. 이것이 바로 공감이라고.


책을 참 더디게 읽었다.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힘든 독서였지만, 어쨌든 읽고 나서 나는 어떤 용기를 얻은 것 같다. 관심을 기울이라고. 주저하지 말라고. 어떻게든 표현해도 된다고. 그런 나의 노력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라고.



공감은 그저 정말 힘드시겠어요 하는 말을 꼬박꼬박 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난을 빛 속으로 끌어와 눈에 보이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공감은 그저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답을 하게끔 질문하는 것이다. 공감에는 상상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질문도 많이 필요하다. 공감하려면 당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감은 자기 시야 너머로 끝없이 뻗어간 맥락의 지평선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20p


공감은 단지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우리 자신을 확장하겠다는 선택. (...) 나는 그의 슬픔에 귀를 기울일 거야, 설사 나 자신의 슬픔에 깊이 빠져 있을지라도. 이렇게 몸짓을 해 보이겠다고 말하는 것. 이는 다른 사람의 마음 상태나 정신 상태 속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을 깎아내린다기보다는 인정하는 것이다. 노력에 대한 이런 고백은 공감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거스른다. 공감이란 항상 자발적이어야 하며, 진정성은 의도하지 않음과 같은 뜻이고, 의도성이란 사랑의 적이라는 인식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의도를 믿으며 노력을 믿는다. 50p




@suri.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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