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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Jul 31. 2015

유재민

매일 밤 찾아오는 헐크

쿵. 쿵. 쿵. 쿵.


헐크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쿵쿵, 쿵쿵.


내 심장 소리도 들립니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끼익, 쿵!


헐크가 집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헐크가 씩씩거립니다. 녀석의 화난 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립니다. 나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온몸이 벌벌 떨립니다. 숨이 막힙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크아아, 크아아.


헐크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집을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쿠당탕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곧이어 헐크가 내 방문을 쾅 걷어차며 들어옵니다. 옷장 문틈으로 헐크가 보입니다. 녀석의 눈에서 불이 납니다. 온몸이 새빨갛게 타오르는 불기둥 같습니다. 헐크가 책상 위에 돼지 저금통을 빡 때립니다. 저금통이 깨지고 동전이 좌르르 쏟아집니다. 책을 북북 찢고 로봇을 퍽 던져버립니다. 찢어진 종이들이 날리고, 부서진 로봇 대가리가 방바닥에 굴러 떨어집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오줌을 쌀 것 같습니다.


콰지직, 콰지직.


헐크는 구두도 벗지 않았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것들이 녀석의 발바닥에서 박살 나는 소리가 들립니다. 헐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옵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습니다. 헐크가 옷장 문을 열고, 뜨거운 손으로 내 목덜미를 잡아 올립니다. 나는 그만 헐크와 눈이 마주칩니다. 새빨간 헐크가 씨익 웃었습니다. 그리고 쾅!



어젯밤 일은 꿈이 아니었습니다. 진짜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우리 집에는 매일 밤 헐크가 찾아옵니다. 녀석은 언제나 화가 나 있습니다. 온몸이 불에 덴 듯 울긋불긋 새빨갛습니다. 녀석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콧구멍을 벌름거립니다. 마치 커다란 용이 콧김을 내뿜는 것 같습니다. 헐크는 우리 집을 때려 부수고 나를 뻥뻥 걷어찹니다. 그리고 새벽이 되어서야 잠잠해집니다. 녀석은 방바닥에 쓰러져 드르렁드르렁 코를 곱니다.  아침해가  피부색이 돌아오고 몸도 작아집니다. 그렇게 헐크가 사라, 여기저기 찢어진 옷을 입은 남자가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납니다. 바로 우리 아빠입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빠를 불러봅니다.

 

“아빠, 아빠예요?”

아빠는 머리에 손을 짚고 나지막이 신음을 내뱉었습니다.


“재민아, 아빠 물 좀.”

나는 얼른 물을 가져다 드렸습니다. 아빠는 단숨에 컵을 비웠습니다.  


“아빠, 어젯밤에 어땠는지 기억나세요?”

아빠는 바닥에 떨어진 안경을 주워 쓰고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리더니 “아니, 기억이 안 나네.”라고 말하고 슬며시 눈길을 피했습니다.


아빠는 집안을 둘러보고 머리를 감싸 쥐었습니다. 아빠는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을 몇 번이나 쉬었습니다. 바닥에 흩어진 유리조각들도, 구멍이 뻥뻥 뚫린 방문도 왜 그런 것인지, 아빠는 정말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멍이 든 내 팔뚝을 발견했을 때에는 거의 울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차마 아빠가 그랬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빠 역시 누가 그랬는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아무  말없이 출근 준비만 했습니다. 지각이라도 했는지 후다닥 양복을 갈아입고 넥타이를 맸습니다. 그리고 나가기 직전에야 나를 불렀습니다.

 

“재민아, 맛있는 거 사 먹어.”

내 손에 만 원짜리 두 장을 쥐여준 아빠는 도망치듯 집을 나갔습니다.




사실 아빠는 헐크야.

 

엄마가 그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말도 안 돼요.”

그러자 엄마가 진지한 얼굴로 내게 물었습니다.


“재민아, 사람들이 아빠를 뭐라고 부르지?”

“박사님이요.”


사람들은 우리 아빠를 박사님이라고 부르고 교수님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빠가 엄청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서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그럼 헐크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지?”

“박사님이요.”

“그래. 아빠도 헐크랑 똑같잖아.”

“하지만 엄마, 헐크는 초록색이에요.”

“아빠는 색깔만 다를 뿐이야. 세상에는 빨간 헐크도 있어. 재민아, 엄마 말 믿지?”


엄마는 힘 주어 내 어깨를 감싸 쥐었습니다. 엄마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재민아, 똑똑한 박사님이 무서운 헐크로 변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상하게 생각하겠죠.”

“사람들이 헐크를 좋아할까?”

“아니요. 싫어할 거예요.”

“그렇지? 재민아, 아빠는 사람들한테 존경을 받는 박사님이야. 그러니까 아빠가 헐크라는 건 꼭 비밀로 해야 해. 절대로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약속.”


엄마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습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새끼손가락을 걸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엄마는 나를 힘차게 껴안았습니다.


“그런데 엄마, 아빠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아니야, 아빠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엄마는 내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습니다.


“사랑하는데 왜 때려요?”


엄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내 뺨을 어루만졌습니다. 내 얼굴은 풍선처럼 퉁퉁 부어올라 있었습니다.


“그건… 헐크 때문이야. 아빠도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헐크가 튀어나온대.”

“왜요?”

“사는 게 힘들어서 그래.”

“아빠는 똑똑하고 유명하고, 돈도 많이 벌잖아요. 그런데 왜 사는 게 힘들어요?”

“그래도 그런 게 있어. 너도 어른이 되어보면 알 거야.”

“하지만 엄마…”

“걱정하지 마, 재민아. 다 괜찮아질 거야.”


엄마가 숨이 막힐 정도로 나를 다시 꽉 껴안았습니다.  


“엄마, 울어요?”

“아니.”


엄마의 몸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얼굴이 닿은 내 목덜미가 뜨거워졌습니다.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더는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엄마도 나처럼 헐크가 무서운 것입니다. 나는 엄마의 등을 쓸어주었습니다. 찔끔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괜찮아질 거라던 엄마의 말과는 달리, 헐크는 날마다 강해졌습니다. 헐크는 무지막지하게 힘이 세고 난폭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울어도 소용이 없고 소리를 질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럼 오히려 더 화가 난 녀석은 힘이 배로 세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헐크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혹시나 내가 녀석을 화나게 한 건 아닌지, 나는 매일 내가 잘못한 것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엄마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헐크로 변신하는 아빠가 미웠지만 그래도 항상 방긋방긋 웃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습니다. 헐크는 막강했습니다.

 

나는 헐크 때문에 밤에 잘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잠이 들어도 악몽을 꿨습니다. 꿈속에서도 헐크는 너무너무 무서웠습니다. 나는 자꾸만 몸이 아프고 살이 빠졌습니다. 나는 한여름에도 긴 소매 옷을 입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끝난 후에는 학교조차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이 비밀을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도 아빠는 헐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조용히 참기만 했던 엄마가 결국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발 그만 해요!”


그러자 헐크는 눈이 새빨개지더니 몸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녀석은 무섭게 달려들어 엄마를 넘어뜨리고 목을 졸랐습니다. 엄마가 캑캑거리면서 손을 허우적댔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 온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재빨리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아저씨, 헐크가 우리 엄마를 죽이려고 해요.”


몇 분 후, 경찰 두 명이 집에 찾아왔습니다.

나는 달려나가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신고받고 왔습니다. 꼬마야, 무슨 일이니?”


나는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로 겨우 손짓했습니다.


“아저씨, 저쪽이요. 저기…”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어느샌가 내 뒤에 다가온 엄마가 스카프를 둘러메며 말했습니다.


“바쁘실 텐데 죄송해요. 저희 부부가 다투다 가벼운 몸싸움이 일어났어요. 애가 놀라서 신고한 모양이에요. 지금은 괜찮아요.”


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엄마를 쳐다봤습니다.

경찰은 우리 둘을 번갈아 보며 물었습니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네, 소란 피워서 죄송해요. 정말 부끄럽네요.”


엄마는 생글생글 웃으며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내 머리 위에서 엄마와 경찰들의 대화가 오갔습니다. 엄마는 계속 죄송하다고만 했습니다.


“엄마, 헐크가 엄마를 죽이려고 했잖아요.”

“어머, 얘도 참. 우리 아들이 요즘 헐크에 푹 빠져 살거든요. 늦은 밤에 정말 죄송해요.”

 

엄마는 자꾸만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때 옆집 문이 빼꼼 열려 있는 게 보였습니다. 옆집 아줌마가 눈만 쏙 내놓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다급히 소리쳤습니다.


“아줌마, 아줌마도 알죠? 우리 집에 헐크가 사는 거, 아줌마도 알죠?”


모두가 옆집 아줌마를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네요.”


아줌마는 재빨리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나는 너 억울했습니다.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우리 재민이가 많이 놀랐나 보네. 엄마가 미안해.”

 

내 머리를 쓰다듬는 엄마의 손이 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경찰들은 금방 돌아갔습니다. 엄마는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눈물을 훔쳤습니다. 하지만 소파 위에 앉아 있는 헐크는 우리를 쏘아보며 비열하게 웃었습니다. 저 못된 괴물이 우리 가족을 아프게 하고, 우리 아빠를 뺏어가려고 합니다. 나는 헐크가 너무나 미웠습니다. 나도 이제 참지만은 않을 겁니다. 엄마를 지키고, 아빠를 되찾을 겁니다. 나는 엄마 앞을 막아선 채, 헐크를 마주 보았습니다.


헐크가 나를 노려봅니다. 나도 헐크를 노려봅니다. 헐크가 으르렁대며 이빨을 내보입니다. 나도 지지 않을 겁니다. 내가 눈을 부릅뜨자, 헐크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습니다. 나를 벽으로 몰아붙이고, 단단한 주먹을 사정없이 내리 꽂습니다. 나는 눈물을 꾹 참고 헐크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습니다.


“아빠, 아파요. 맞기 싫어요.”


헐크의 주먹이 주춤합니다. 나는 그 틈을 타, 헐크의 두 주먹을 꽉 끌어안고 소리쳤습니다.


“아빠, 우리 아빠로 돌아와요.”

 

갑자기 힘이 솟았습니다. 나는 젖 먹던 힘을 짜내서 헐크와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헐크를 마주 보았습니다. 씩씩거리는 소리가 공중에서 맞부딪쳤습니다. 순간, 헐크가 내 멱살을 들어 내팽개쳤습니다. 그리고 구둣발로 나를 뻥 걷어찼습니다. 나는 팅팅볼처럼 벽에 세차게 부딪쳤다가 바닥에 데구루루 굴렀습니다. 머리가 띵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헐크가 나를 내려다보며 씨익 웃고 있었습니다. 나는 정말 참을 수 없이 화가 났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나는 얼굴이 새파래지고 핏줄이 불끈불끈 솟았습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나는 씩씩거리며 콧김을 내뿜었습니다.


“크아아. 크아아.”


나는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내 몸은 헐크보다 두 배나 커졌습니다. 떡 벌어진 어깨는 천장에 닿을락 말락 하고, 초록색 주먹은 바위처럼 크고 단단해졌습니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온 힘을 실어서, 헐크의 머리통에 강펀치를 날렸습니다.



아빠! 제발 정신 좀 차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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