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수리 Oct 20. 2015

독고순이

독고순이 여사의 낮잠

독고순이 여사는 올해로  예순아홉. 인생의 오 분의 사, 아홉수의 오 분의 사를 살고 있었다.


독고순이 여사는 성품이 우직하고 정신 상태가 올곧으며 믿음이 굳건한 데다가 신앙심이 매우 깊은 ‘권사님’이었다.


‘독고 권사님’으로 불리는 독고순이 여사는 그야말로 꼿꼿한 대나무 같은 사람이었다. 남에게 폐를 끼친 적도, 해코지한 적도 없었다. 선의의 거짓말까지 통틀어, 모든 거짓말은 죄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입바른 소리만 했다.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 정확한 시간에 잠이 들었으며 평생 새벽기도와 주말 예배에 빠진 적이 없었다. 독고순이 여사는 정직하고 성실했으며 바르고 엄격했다. 누군가 죄를 저지른다고 생각될 때는 따끔하게 직언을 할 줄 아는 담대함도 지니고 있었다.


사람들은 독고순이 여사를 싫어했다. 특히나 여사의 꼿꼿한 성격과 입바른 소리를 아주 싫어했다. ‘독고순이 여사는’이란 주어 뒤에는, 고지식하다. 융통성이 없다. 사회성이 부족하다. 꼬장꼬장하다. 등의 서술어가 따라 다녔다.


하지만 우뚝 솟은 고매한 대나무가 그러하듯, 독고순이 여사는 주변의 잡음과 흔들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도 온갖 핍박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지 않으셨던가. 그리하여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이끌고, 온 세상에 은총을 뿌리지 않으셨던가. 독고순이 여사는 오늘도 아멘. 오로지 주님만을 믿었다.


독고순이 여사의 성공한 남편은 자주 집을 비웠다. 출가한 자식들과는 사이가 데면데면했고, 며느리와는 연을 끊었다. 딱히 수다를 떨 만큼 친한 친구가 없었다. 그러나 독고순이 여사는 외롭지 않았다. 독실한 신앙과 충만한 성령이 여사의 삶을 채워주었다. 쉴 새 없이 말씀을 중얼거리며 진지하게 성경책을 넘기는 여사의 모습은 연구에 몰두한 어느 천재 학자 같았다. 독고순이 여사는 그렇게 독야청청 독실한 권사님의 아우라를 뿜어냈다.  



예순아홉 해를 우뚝하게 살아온 독고순이 여사를 흔든 것은, 다름 아닌 불면증이었다.


불면증은 어느 날 불현듯 찾아왔다. 특별한 기미는 없었다. 하루는 삼십 분 늦게 잠이 들었고, 다음 날은 한 시간 늦게 잠이 들었다.  그다음 날은 한 시간 반,  그다음다음 날은 두 시간. 불면증은 희한하게도 정확히 삼십 분씩 늘어났고 결국, 독고순이 여사는 꼬박 밤을 새우는 날이 생겼다. 새벽 기도시간에 조는 일도 생겼다. 온몸에 추를 매단 듯 무겁고 축축 처졌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난생처음 느끼는 불쾌감이었다.



“여보, 요즘 통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거 참, 당신도 이제 늙어서 그래. 병원에 가봐요.”


남편은 말했다.


“얘야, 요즘 잠을 잘 수가 없다.”

“엄마, 원래 나이가 들면 잠이 없어진대요. 엄마도 곧 칠순이니 그럴 수 있어요.”


맏딸이 말했다.


“얘, 내가 말이다.”

“어머니, 우리 연락 끊었잖아요. 아범한테 얘기하세요.”


며느리가 말했다.



결국 독고순이 여사는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분명히 ‘잠들지 못하는’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독고순이 여사는 단호하게 ‘없다’고 진단 내렸다. 자신의 철저한 하루와 바른 생활에 빈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은 부족함이 없었다. 주님의 사랑으로 마음은 차고 넘칠 만큼 풍요로웠다. 어떠한 결함도 있을 리가 없었다.


독고순이 여사의 미간과 입술과 팔자주름이 너무나 단호했기 때문에, 의사는 직감적으로 여사가 말이 통하지 않는 환자라는 걸 알았다. 의사는 고분고분 수면제를 처방해주었다.


독고순이 여사는 수면제를 먹었다. 하지만 불면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멍청하고 졸린 상태가 지속되어 깜빡 조는 일이 많아졌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무기력함이 몰려왔고,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생겼다.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독고순이 여사는 잠들어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침대 곁에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난생처음 느끼는 괴로움이었다.


독고순이 여사는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그리고 TV를 틀었다. 개그맨들이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TV 노이즈가 딱 적당한 볼륨과 톤으로 떠들고 있었다. 마치 자장가처럼. 보통 노인들은 이런 상태에서 잠이 들더군. 독고순이 여사는 모로 누워 TV를 시청했다. 눈이 반쯤 감겼다가 떠졌다. 또 반쯤 감겼다가 떠졌다. 그렇게 세 시간 동안 있었지만 독고순이 여사는 잠들 수 없었다.



괴로운 날들이 계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독고순이 여사는 불현듯 찾아온 불면증처럼 갑자기 또 불현듯 잠이 들었다.


여느 때처럼 점심을 먹고, 청소를 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소파에 앉았다. 따뜻한 녹차를 마시며 성경책을 읽고 있는데 블라인드 사이로 주황색 햇살이 쏟아졌다. 피아노 건반처럼 하얗고 까만,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며 기다랗게 늘어졌다. 독고순이 여사의 눈두덩이에도 따뜻한 빛이 내려앉았다. 눈을 떴다. 감았다. 빛의 잔영이 꿈처럼 어른거렸다.


하품이 나왔다. 독고순이 여사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따뜻한 녹차 한 모금을 마셨다. 성경책의 글자들이 서서히 아득해졌다. 따뜻한 기운이 뱃속에 퍼지고 독고순이 여사는 나른한 눈을 감았다.


깊은 낮잠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독고순이 여사가 눈을 떴을 땐, 깜깜한 밤이었다. 내가 잠이 들었었구나. 얼마나 잔 거지. 몇 시쯤 되었을까.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해가 져 버린 거실에는 쌀랑한 기운이 감돌았다. 잠이 덜 깬 독고순이 여사는 머리가 무거웠다. 쇳덩이가 짓누르는 듯 무겁고 싸늘한 느낌이 뒤통수를 얼얼하게 감쌌다.


독고순이 여사는 잠시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었다. 깨어난 지금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할 수 없는, 기묘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둔 밤, 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에서 내렸는데 그곳에 아무도 없는 서늘한 느낌. 깜깜한 복도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그곳에 오로지 나 혼자인 것 같은 아슬한 느낌. 생각보다 섬뜩한 느낌이 스멀스멀 독고순이 여사의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여보세요. 아 아. 여보세요.”


텁텁한 목소리가 공간 안에 텅텅 울려 퍼졌다. 낯선 목소리였다. 내 목소리가 원래 이랬던가. 독고순이 여사는 목덜미를 만지며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깜짝 놀랐다.


깜깜해도 너무 깜깜했다.


독고순이 여사는 손을 내밀어 흔들어 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도 깜깜해서 제 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짙은 어둠일까. 아니면 내가 눈이 멀어버린 걸까. 그 순간 어둠보다 더 깜깜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독고순이 여사는 소파에서 내려와 바닥을 더듬었다. 어딘가에 성경책이 있을 텐데, 어딘가에 휴대폰이 있을 텐데, 어딘가에 리모컨이 있을 텐데. 아무리 더듬어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손끝에 싸늘한 냉기가 느껴졌다. 무서웠다.


그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독고순이 여사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세차게 쥐었다. 그리고 천장을 향해 외쳤다.  


“오, 주여.”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깜깜한 어둠 속에서.

독고순이 여사의 외로움만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