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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Nov 12. 2019

엄마랑 친해지고 싶다

엄마는 어떤 책을 좋아해?

좋아하는 작은 책방에 엄마를 데리고 갔다. 엄마는 책방을 둘러보다가 조용해졌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하고 조그맣게 말했다. 8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주인이 직접 큐레이션한 책들이 꽂혀있었다. 책 소개를 적은 손글씨 메모지가 곳곳에 붙어 있고, 주인의 취향이 담긴 그림과 엽서, 마른 꽃과 스노우볼이 소박하게 놓여 있었다. 다정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가진 공간이었다.     


엄마는 '박완서의 말'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한 번 꺼내 봐도 되냐고 물었다. “그럼. 엄마, 편하게 책 읽어도 돼.” 엄마는 조심스레 책을 꺼내 표지를 매만지다가 책장을 넘겼다. 책을 좋아하지만 학생들 참고서 위주로 판매하는 서점이 전부인 소도시에 사는 엄마. 엄마가 사는 곳에서 그나마 편히 책을 읽을 만한 공간은 도서관뿐이다. 인터넷으로 책 구매하는 일도 어려운 엄마는 늘 나에게 책을 좀 사서 보내줄 수 있겠냐고 부탁하곤 했다. 그런 엄마에게 이런 책방은 정말이지 깜짝 놀랄만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카페처럼 커피와 음악이 있고, 정성껏 선정한 책들이 모여 있는 곳. 내가 좋아하는 책을 발견하면 괜히 즐겁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마음에 맞는 책을 만나면 사서 가져갈 수 있는 곳. 이런 작은 책방에서 산 책들은 자연스레 공간과 이야기가 스며들어 기억에 남는 특별한 책이 된다. 선물 같은 책이 된 달까. 이것이 내가 작은 책방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단골 책방 <그렇게 책이 된다>에서 엄마


노들서가에 처음 왔을 때도 나는 여기 엄마와 함께 오고 싶단 생각을 했다. 가장 먼저 마주한 모습이 엄마의 훗날 같았기 때문이다. 백발의 할머니가 나무 벤치에 앉아 혼자 책을 읽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가에 전시된 책을 구경하는 중년부부, 책을 펼쳐두고 사진 찍으며 웃고 있는 연인들, 편한 차림에 이어폰을 끼고 책 읽는 청년, 그림책을 읽어주는 엄마, 연필로 무언가 쓰고 있는 아이들. 의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앉고 기대어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책과 함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노들서가의 섬세한 큐레이션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대형 출판사가 매대를 사서 베스트셀러를 쌓아두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고전부터 장르문학, 에세이, 그림책, 독립출판물에 이르기까지. 작지만 자기만의 철학이 있는 출판사의 책들, 미처 알지 못했던 특색 있는 분야의 출판사 책들이 아트북처럼 전시되어 있다. 2층 집필실에는 일상 작가들이 추천하는 책과 브런치 작가들의 책이 전시되어 있다. 좋은 책과 작가를 발견하려는 마음이 느껴진다. 곳곳에 연필과 종이가 비치되어 언제든 무엇이든 쓸 수도 있다.


그러니까 북크닉. 책(북book)과 함께 피크닉을 나온 느낌이랄까. 나는 여기의 명랑하고 사려 깊고 정다운 분위기가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노들서가>의 첫인상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삶에도 드라마는 있다고. 언제나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살피고 쓰는 작가인 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진 한 권의 책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였나. 노들서가에서 책을 만나고 돌아가는 기분이 마치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난 후의 기분 같았던 것은.


책도 사람도. 어렵게 억지로 읽어야만 읽히는 존재가 아니다. 자주 만나 들여다보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눠야 읽힌다. 친해진다. 이해할 수 있다. 도심 속에 이런 문턱 없는 아름다운 공간이 생겨서 고마웠다. 공원을 산책하는 마음으로,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노들서가를 자주 오갈 것 같다.


“엄마, 우리 북크닉 갈까?”


꼭 엄마를 데리고 와봐야지. 엄마는 어떤 책을 좋아할까. 어떤 작가를 좋아할까. 생각해보니 나는 엄마에 대해 그런 것도 잘 모르는 딸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야? 이건 내가 좋아하는 책이야. 이 책 같이 읽어볼래? 서가를 거닐며 책 구경을 하다가, 각자 책 읽는 시간을 보내다가, 서로에게 주고픈 책을 골라 선물해야지. 노을이 질 때쯤 밖으로 나가 노들섬을 산책해야지. 엄마와 팔짱을 끼고 사부작사부작 걸어 다니며 이야기 나누고 싶다. 밤이 올 때까지 천천히. 엄마랑 친해지고 싶다.


비 내리는 노들섬

노들서가 집필실에서 일상작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이 글은 집필실 10월 글세로 쓴 글입니다. 집필실 이용료를 글로 받는다는 것도 참 멋지지 않나요? 틀림없이 좋은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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