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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Dec 02. 2019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작은 존재들을 위한 노래

"그런데 저를 아세요?"

얼굴이 익은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가 이런 대답을 들었다면.

 

<고유글방> 2기 두 번째 시간. 수연님의 글을 들으며 '존재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수연님은 최근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에게 말을 건넸다가 "그런데 저를 아세요?"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가 존재감이 없어서..."라고 대답하곤 겸연쩍게 웃어버렸는데, 그 말이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고 했다.

 

그때 문득 '존재감'이란 말이 잔인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내가 있으면 있는 거지, 내가 있음을 타인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은 무언지. 보여지는 것들에 초연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솔직한 마음을 글로 썼다. 관계와 대화의 틈 사이를 비집고 쓴 글이었다. 곱씹을수록 모래알을 씹은 듯 까끌해서 나는 어떠했는지 듣는 내내 생각하고 돌아보았다. 좋은 글이었다.


'존재감 있다' 혹은 '존재감 없다'로 타인을 평가하고 나 자신을 재보았던 적 있는지. 존재감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작아지고 울적했던 적이 있는지. 민경님은 이 글을 듣고 이소라의 노래 Track 9이 떠올랐다고 추천했다.


글방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노래를 들어보았다. '존재하는 게 허무해 울어도 지나면 그뿐.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노래하는 목소리에 시큰해졌다. 선명하거나 드러나지 않더라도,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어낸다. 그렇게 살아간다. 그 태도가 조곤조곤한데 어찌나 씩씩한지. 몇 번이고 다시 들으며 거리를 걸었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이렇게 태어났고

태어난지도 모르게 그렇게 잊혀지겠지

존재하는 게 허무해 울어도 지나면 그뿐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이소라 'Track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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